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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창간5주년 기획] 박지원, 정치적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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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창간5주년 기획] 박지원, 정치적 풍운아를 조명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6/10/13 17:42 수정 2026.10.13 18:02
- 호남 정치인 그러나 호남에 머무르지 않은 대한민국 정치의 증언자
- 한때 '중통령'이라 불리운 사나이

 

[굿모닝전북신문 창간5주년 기획] 왜 지금, 정치인 박지원을 다시 조명하는가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현재의 자리만이 아니다. 어떤 길을 걸어왔고, 실패의 순간에 어떻게 다시 일어섰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겼는가도 정치인의 무게를 결정한다.

굿모닝전북신문이 지금 정치인 박지원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지원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인 동시에, 정치적 논란과 시련, 선거의 부침을 모두 경험한 정치인이다. 그를 무조건 미화할 필요도, 반대로 과거의 논란만으로 평가절하할 이유도 없다. 공과 과를 함께 놓고 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며, 그것이 굿모닝전북신문이 지향하는 정치 보도의 시선이다.

특히 전북 정치권이 박지원의 정치 인생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정치는 한 번의 선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선됐다고 영원히 성공한 것도 아니고, 낙선했다고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도 아니다. 결국 정치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선거 결과만이 아니라 경험과 실력,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정치적 내공이다.

이는 낙선에 실망한 젊은 정치인들에게도,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정치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다. 특히 전북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계파와 자리, 공천과 당선에 지나치게 매몰되기보다 “선거 이후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박지원의 정치 역정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성공과 실패, 영광과 논란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후배 정치인들에게 더 현실적인 교과서가 될 수 있다.

한 번의 낙선이 정치인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듯, 한 번의 당선도 정치인의 완성은 아니다.

굿모닝전북신문은 박지원이라는 한 정치인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의 한 시대를 돌아보고, 동시에 오늘의 전북 정치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묻고자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역사다. 그리고 정치인의 진짜 평가는 자리에 있을 때보다 자리를 내려놓은 뒤에도 무엇이 남아 있는가에서 시작된다.

「박지원, 호남의 정치인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의 증언자가 되다」
‘中統領’이라 불렸던 남자…DJ의 복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국정원장·5선 의원까지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로 향하던 시절, 월간중앙은 당시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다룬 한 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中統領’ 박지원의 파워.
한기홍 월간중앙 기자가 쓴 이 기사는 당시 박지원이라는 인물이 청와대에서 차지하고 있던 독특한 위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기사의 핵심은 단순했다.
박지원은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아 실행하는 일반적인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해석하고 다시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월간중앙은 김중권 비서실장과 박지원 공보수석의 관계를 비교하면서, 김 실장과 김 대통령의 독대가 공식적·정책적 성격이었다면 박 수석과의 독대는 비공식적·정치적 성격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는 당시 기자가 취재한 정치권 인사들의 평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02년 당시 언론이 박지원을 이미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핵심 정치 참모’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지금 박지원의 정치 경력을 돌아보면 그때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을 듣는 사람’에서 ‘대통령에게 말을 하는 사람’으로
박지원의 가장 독특한 정치적 자산은 말을 잘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듣는 능력이었다.
2002년 월간중앙은 박지원의 메모 습관과 정보 취합 능력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핵심을 기록하고 행간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설명할 때는 대통령의 의중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다. 이 대목은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정치에서 말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듣고, 그 속뜻을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보태 다시 판단의 언어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당시 월간중앙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박지원은 대통령에게 ‘예스’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대통령이 듣기 싫어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참모였다는 것이다.

‘中統領’이라는 표현이 남긴 의미
‘중통령’.
중간의 대통령이라는 뜻의 이 표현은 공식 직함이 아니다.
당시 박지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언론이 사용한 표현이다. 따라서 오늘날 이 표현을 사실상의 권력 서열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만 당시 정치권에서 박지원이 얼마나 대통령과 가까운 핵심 참모로 인식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는 의미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박지원은 단순한 비서가 아니었다.
공보수석으로 언론을 상대했고, 정책기획수석으로 국정 현안을 다뤘으며, 문화관광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특히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은 중국에서 북한 측과 비밀협상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이끌었다고 연합뉴스는 평가했다.

DJ의 정치적 복심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이미지에 그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박지원의 정치사는 ‘성공담’만으로 쓸 수 없다
여기서 기자가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박지원의 인생을 우호적으로 조명한다고 해서 그의 정치적 논란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과 과를 함께 기록해야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의 무게가 더 커진다.

그에게는 김대중 정부의 핵심 참모라는 영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북송금 특검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파도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구속과 옥고를 겪었다.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지원이 그 사건으로 정치적 생명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목포에서 국회의원으로 재기했다. 18·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1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가 2024년 22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2020년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으로 발탁됐다.

정치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장면 가운데 하나가 ‘권력을 잃은 정치인의 재기’다.

박지원의 정치사는 바로 그 재기의 반복이었다.

전두환 시대와의 인연, 박지원 정치사의 불편한 그림자
2002년 월간중앙 기사는 박지원의 과거까지 파고들었다. 특히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미주 한인사회에서 환영행사를 열었던 일, 전두환 일가와의 친분 등이 훗날 그의 정치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당시 평민당과 민주화 진영에서 활동하던 박지원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과거였다.

월간중앙은 이를 박지원에게 붙은 일종의 정치적 ‘족쇄’로 묘사했다.
다만 이 부분 역시 당시 기사에 등장하는 평가와 정치권의 주장으로 구분해야 한다. 박지원 본인은 당시의 행위가 정치적 판단 착오였다는 취지로 설명했다는 것이 기사에 함께 나온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박지원이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한 정치세력의 정통 코스만 밟아온 인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의 사업가에서 시작해 한인사회 지도자가 되고, 전두환 시대의 정치적 공간을 거쳐 김대중을 만나 민주화 진영의 핵심 참모가 된 사람.

그의 정치적 궤적은 직선이 아니었다.
굴곡이 심했다.
그래서 오히려 정치적 생명력이 강했다.
학벌도, 정치적 배경도 없었다
박지원의 또 다른 특징은 출발점이다.
문태고등학교, 광주교육대, 단국대 상학과.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문대 중심의 정치 엘리트 코스와는 다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했고, 뉴욕 한인사회에서 정치적 기반을 만들었다.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웠다. 연합뉴스도 박지원이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뒤 김대중을 만나 정치에 입문했고, 1992년 전국구로 처음 국회에 진출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박지원의 정치 인생을 단순히 ‘DJ가 발탁한 사람’이라고만 표현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그는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만들어 김대중에게 접근했고, 김대중의 신임을 얻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넓혀간 사람이기도 하다.


박지원의 가장 큰 무기는 ‘관계’였다
박지원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관계다. 그러나 여기서 관계란 단순한 친분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자체가 정치적 자산이다.
상대방과 싸울 때도 완전히 관계를 끊지 않고, 오늘의 경쟁자를 내일의 협상 상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박지원의 정치적 위치가 계속 변화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야권 출신이었던 박지원을 국가정보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당시에도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됐다. 문재인 정부는 그가 정보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국정원 업무에 정통하고 남북관계 조정 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세력의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이 된 것이다. 이 장면 하나만 보더라도 박지원 정치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적과 동지를 영원히 구분하지 않는 정치.
물론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정치적 실용주의 또는 기회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기자가 기록해야 할 것은 그가 실제로 그렇게 정치해왔다는 사실이다.

국정원장 박지원, ‘DJ의 사람’에서 국가정보기관 수장으로
2020년 국가정보원장 발탁은 박지원에게 또 하나의 역사적 장면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치인이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됐다. 연합뉴스는 당시 박지원을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이끈 대표적인 대북 정보통 정치인으로 소개했다.

이것은 박지원 정치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는 단순한 선거 정치인이 아니다. 국회와 청와대, 정당과 정보기관, 남북관계의 현장을 모두 경험했다. 입법부와 행정부, 외교·안보 영역을 두루 거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력은 한국 정치에서도 상당히 독특하다.

그리고 다시 국회로 21대 총선 낙선은 박지원에게 정치적 퇴장의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전남 해남·완도·진도에서 당선되며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그는 5선 의원이다. 2026년 5월 SBS 인터뷰에서는 국회의장 도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여전히 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대목에서 박지원의 정치사를 다시 보게 된다.
14대 국회 → 청와대 → 장관 → 대통령 비서실장 → 정치적 시련 → 목포 재기 → 원내대표 → 당 대표 → 국정원장 → 낙선 → 22대 국회 복귀. 한 사람의 정치 이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온 길이 너무 많다.

이제 박지원을 ‘호남 정치인’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박지원의 정치적 뿌리가 호남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활동의 무대는 호남보다 훨씬 넓었다.

청와대가 있었고 국회가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정당의 창당과 분당도 경험했다. 여야의 협상 테이블도 경험했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정치도 경험했다.

그렇다면 박지원이라는 사람을 이제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호남의 박지원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무엇을 남겼는가.” ‘차기 비서실장 추천’ 보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박지원의 이름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해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면 이 부분은 기사에서 상당히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박지원의 이름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실이 박지원에게 차기 비서실장 후보 추천을 요청해 추천을 했지만 누구라고는 밝히지 않았다.

박지원의 무게는 ‘몇 선’에 있지 않다. 박지원의 정치적 무게를 5선이라는 숫자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가 가진 자산은 경험의 폭이다.

김대중의 정치. 청와대., 남북정상회담.국회. 야당. 여당. 원내대표.
당 대표. 국가정보원. 그리고 다시 국회. 여기에 정치적 실패와 낙선, 구속과 옥고까지 있다. 그래서 박지원의 정치사는 성공의 기록만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 정치인의 생명력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기자의 눈으로 본 박지원
박지원은 완벽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선택 가운데는 논란이 있었고, 정치적 언어가 지나치게 날카롭다는 비판도 있었다.
과거 행적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대북송금 사건이라는 무거운 정치적 상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위기의 순간마다 정치적 공간을 다시 만들어왔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했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 참여했고, 국회에서 여야를 경험했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을 맡았으며 낙선 뒤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 정도의 정치적 궤적을 가진 인물을 단순히 ‘호남 정치인’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정치사를 축소하는 일이다.

박지원의 진짜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2년 월간중앙은 박지원을 ‘中統領’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당시의 청와대 핵심 참모는 이제 대한민국 정치의 원로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가 됐고, 노무현 대통령도 역사가 됐으며, 문재인 정부도 이미 과거가 됐다.

그런데 박지원은 아직 정치 현장에 있다. 이것이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여러 시대를 관통해온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시대에서 정치에 들어와 노무현의 시대를 지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살아남았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이 됐고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6년 현재도 국회의장 도전 의사를 밝히며 정치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정치적 공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역사의 몫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기록할 수 있다. 박지원은 한국 현대정치의 중요한 장면마다 이름을 남긴 정치인이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은 대한민국 정치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것이 80대 중반을 넘어선 한 원로 정치인을 다시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호남에서 출발했지만 호남에 머물지 않았던 정치인. 대통령을 보좌했지만 스스로 정치인이 된 사람.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권력을 잃어본 사람. 옥고를 치렀지만 다시 국회로 돌아온 사람. 그리고 지금도 정치의 한복판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 그 이름이 박지원이다.

 

혹자는 박지원과 삼국지의 삼국통일을 이룬 사마염의 조부 사마의와 비교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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