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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잠재적 범죄집단의식 버려야(사진_AI이미지 제작) |
[반론] 경찰 13만명을 '잠재적 사고집단'으로 보는 시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김창균 주필의 9.3자 「내달부터 黨·靑이 경찰 연대 보증, 뒷감당 자신 있나」라는 칼럼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제도 변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수사기관 개편처럼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문제일수록 찬반 양측의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설은 정당한 제도 비판의 범위를 넘어섰다.
문제는 경찰 수사권 확대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의 위험성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경찰 13만여 명 전체를 언제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집단처럼 묘사했다는 점이다. “13만 경찰 중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칠지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이 문장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국가의 치안과 수사를 담당하는 13만 경찰공무원을 사실상 잠재적 사고 유발 집단으로 전제하는 표현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경찰 조직 전체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집단처럼 바라보는 시각이다.
과연 이것이 공정한 언론의 비판인가.
경찰 13만명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 조직에는 약 13만 명의 경찰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 범죄 현장에 출동하고, 살인·강도·성폭력·마약·사기 사건을 수사하며, 교통사고와 재난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물론 경찰 조직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이 완벽할 수는 없다. 비위 경찰관도 있을 수 있고, 부실수사도 발생할 수 있으며, 직권남용이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는 개별적 일탈의 문제다.
일부 경찰관의 비위 가능성을 이유로 전체 13만 경찰을 “누가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집단”으로 묘사한다면, 같은 논리는 검찰과 법원, 국회, 언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검찰청 소속 검사 중 누가 언제 잘못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 전체를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는가.
법관 중 누가 언제 잘못된 판결이나 비위를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사법부 전체를 위험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국회의원 중 누가 비리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이유로 국회를 잠재적 범죄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개인의 일탈을 조직 전체의 본질로 일반화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다. 경찰에게만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검찰 보완수사권'이 경찰 수사의 유일한 안전장치라는 주장도 과장이다
김창균 칼럼의 핵심 논리는 간단하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 경찰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장치가 없어지고, 결국 피해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경찰 수사를 통제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검찰의 보완수사권 하나뿐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현대 형사사법제도에는 여러 단계의 통제 장치가 존재한다.
첫째, 경찰 내부의 수사지휘와 사건 심사 시스템이 있다.
둘째, 경찰 수사에 대한 이의제기와 재수사 요구 제도가 존재할 수 있다.
셋째, 법원의 영장심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사의 적법성과 증거의 신빙성이 검증된다.
넷째, 변호인의 조력을 통한 방어권 행사가 있다.
다섯째, 국가인권위원회와 감사기관, 국회,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존재한다.
여섯째, 경찰관 개인의 위법수사에 대해서는 형사책임과 징계책임, 국가배상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즉,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사라진다고 해서 경찰 수사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은 지나친 단순화다.
정말 필요한 것은 “검찰이 경찰을 계속 지휘해야 한다”는 과거식 사고가 아니라, 경찰 수사의 독립성과 함께 실효적인 외부통제와 사후검증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논의다.
'견제가 사라지면 경찰이 흐트러진다'는 것은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설은 이렇게 주장한다.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 사라지면 경찰 업무 태도는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만 제대로 수사하는 조직인가. 검찰이 감시하지 않으면 경찰은 곧바로 부실수사를 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조직인가.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경찰 조직은 독자적인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지 못한 채 검찰의 감독 아래에서만 움직인 조직이었다는 뜻인가.
이것은 경찰 조직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수 있다. 경찰은 더 이상 과거의 단순 치안기관이 아니다. 사이버범죄, 금융범죄, 마약범죄, 조직범죄, 디지털 성범죄, 국제범죄 등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국가 수사기관이다.
수사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경찰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검찰 종속이 아니다. 전문수사 역량의 강화와 독립적인 책임체계의 확립이다. 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견제와 지휘·종속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경찰을 견제해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검찰이 경찰 수사를 다시 뒤집을 수 있는 구조가 유지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0.73%를 '하루 2건의 참사'로 연결하는 것은 통계의 정치적 활용이다
칼럼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 보완수사로 결론이 뒤집히는 비율이 0.73%라고 하더라도 연간 수백 건, 하루 평균 두 건 정도의 사건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심각한 문제로 제시한다. 물론 단 한 건의 억울한 피해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통계를 평가할 때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사건들이 어떤 사건인가. 단순한 법률적 판단의 차이인가. 추가 증거 발견에 따른 결론 변경인가. 절차상 보완인가. 아니면 경찰의 명백한 부실수사인가.
이 모든 것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하루 2건”이라고 계산해 마치 매일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대형 부실수사가 발생하는 것처럼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통계가 나온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0.73%의 오류가 존재한다면 경찰의 수사 역량을 높이고 사건 심사체계를 강화하면 된다.
왜 오류의 존재 자체를 경찰 독자수사의 불가능성으로 연결해야 하는가.
의사가 오진한다고 해서 모든 진료를 다른 직업군이 최종 승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가 오판한다고 해서 판사를 다른 행정부 기관이 감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전문성을 높이고 책임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현대 행정의 기본 원칙이다.
부산 돌려차기 등 개별 사건을 모든 경찰 수사의 일반적 모습처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부실수사 사례는 반드시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특정 사건을 반복적으로 꺼내어 경찰 전체 수사 시스템의 일반적 모습처럼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부실수사 사례가 있다고 해서 경찰 수사 전체가 부실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검찰의 잘못된 수사나 기소 사례가 존재한다고 해서 검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관이든 오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경찰은 믿을 수 없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답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경찰 수사의 오류를 어떻게 조기에 발견할 것인가. 피해자가 수사 결과에 불복할 경우 어떤 절차를 제공할 것인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누가 감시할 것인가. 검찰이 아닌 독립적인 수사심사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이런 논의가 진정한 제도개혁이다.
'당·청이 경찰의 무한 연대보증을 섰다'는 표현은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
칼럼의 제목 자체가 강한 정치적 프레임이다.
“내달부터 黨·靑이 경찰 연대 보증, 뒷감당 자신 있나.”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경찰관 개인의 모든 행위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는 것은 아니다. 법률을 개정하고 새로운 수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제도적·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지, 13만 경찰관의 모든 개인적 일탈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국회가 법률을 만들었다고 해서 모든 공무원의 비위를 국회의원이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했다고 해서 해당 부처 공무원의 모든 범죄행위까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경찰 제도 개편만을 두고 “당·청이 13만 경찰의 무한 연대보증을 섰다”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더구나 이 표현에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경찰 13만 명 중에서는 언제든 대형 사고를 칠 사람이 나올 것이며, 그것은 결국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라는 전제다. 이것은 정책 비판이 아니라 경찰 조직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경찰관도 국민이며 공직자다
경찰관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다.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수사가 부실하면 비판받아야 한다. 권한을 남용하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경찰관 역시 국민으로부터 최소한의 신뢰와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13만 명의 경찰관 중 일부가 비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로 전체를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집단”으로 묘사한다면, 누가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는가.
수사기관의 개혁은 경찰관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찰이 책임 있게 독립된 수사기관으로 성장하도록 제도와 인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옳은지 그른지는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폐지 이후 예상되는 문제점도 점검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면 보완해야 한다. 재수사 절차가 미흡하다면 강화해야 한다.
경찰 수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 논쟁을 “경찰 13만 명 중 누가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제도개혁 논쟁을 공포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 제도가 실제로 어떤 사건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했고, 다른 대체 장치로는 왜 부족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경찰을 잠재적 사고집단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가장 쉬운 주장일 뿐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다.
결국, 경찰 개혁의 출발점은 불신이 아니라 책임 있는 견제다
대한민국 경찰 13만 명을 두고 “누가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한 일반화다. 일부 경찰관의 비위와 부실수사는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전체 경찰 조직을 잠재적 사고집단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반대하기 위해 경찰 전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건강한 수사개혁 논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경찰에 대한 맹신도 아니다. 검찰에 대한 맹신도 아니다. 정답은 권한을 가진 기관은 누구든 견제받아야 하고, 잘못한 기관은 누구든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경찰의 수사권이 확대된다면 그에 걸맞은 통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제는 반드시 검찰의 지휘권이나 보완수사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인 사건심사, 피해자 이의제기 절차, 법원의 사법적 통제, 수사 과정의 투명성 강화 등 더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이번 논쟁의 본질은 이것이다. “경찰을 믿을 것인가, 검찰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수사기관도 국민 위에 설 수 없도록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언론 역시 그 논쟁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찰의 잘못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 가능성을 근거로 13만 경찰 전체를 언제든 사고를 칠 수 있는 집단처럼 묘사하는 순간, 그것은 비판을 넘어 편견이 된다.
수사기관 개혁은 공포가 아니라 사실로 논의해야 한다.
경찰 개혁은 불신이 아니라 책임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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