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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청래 전 민주당대표(사진_굿모닝전북신문) |
[기자수첩] 정청래의 ‘자기부정 정치’—기억과 기록 앞에서 무너지는 선언
정치는 결국 기록과 기억의 충돌 위에서 평가된다. 말은 남고, 행적은 축적된다. 그리고 유권자는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내놓은 “대표 시절 자기정치를 하지 않았다”, “사천도 없었다”,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발언은 단순한 자기평가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흔적을 스스로 지우려는 일종의 ‘자기부정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그 선언이 정치적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다.
한국 정당 정치에서 당 대표의 권한은 결코 상징적이지 않다. 특히 공천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존재하고,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더라도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과 영향력은 당 지도부에 귀속된다. 이는 제도적 사실이다.
실제로 역대 주요 정당의 공천 갈등 사례를 보면, “개입하지 않았다”는 지도부의 해명은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특정 인물의 배제, 전략공천, 컷오프 결정 등이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진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는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전북 사례는 그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원택 전북도지사가 “정 대표가 나가라고 해서 출마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발언은, 설령 그것이 ‘정치적 조언’이었다고 하더라도 무게가 가볍지 않다. 당 대표의 한 마디는 일반 정치인의 권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사실상 ‘정치적 신호’이며, 때로는 ‘출마 승인’으로 해석된다.
이 지점에서 “개입이 없었다”는 주장과 충돌이 발생한다. 정치에서 개입은 문서로만 남지 않는다. 오히려 비공식적 신호와 권력의 암묵적 작동 방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전남 지역에서 제기된 공천 번복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공천심사 과정에서 추천된 후보가 최종 단계에서 변경됐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중앙당은 이를 전략적 판단이라고 설명하지만, 지역 정치권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왜 바뀌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할수록, 그 결정은 ‘보이지 않는 개입’으로 인식된다.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치학적으로도 공천의 정당성은 '절차적 투명성(procedural legitimacy)'에서 나온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렸는지가 공개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기준에서 보면 “사천은 없었다”는 선언은 설명이 아니라 주장에 가깝다. 설명은 근거를 필요로 하지만, 선언은 책임을 회피할 때 자주 등장한다.
야권의 비판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사천이 없었다는 것은 당사자의 선언이 아니라 유권자의 평가 대상”이라는 지적은 정치적으로 타당하다. 실제로 한국 정치에서 ‘사천 논란’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공천 당시에는 침묵하던 문제들이 선거 이후 폭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민주당 내부의 문제 제기다. 비명계뿐 아니라 일부 친문 인사들까지 전당대회와 지방선거를 거치며 “당 대표 권한의 과도한 집중”을 지적해 왔다. 이는 특정 계파의 불만이 아니라 구조적 경고에 가깝다.
정당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리더십이 공천 권한과 결합할 때,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곧바로 ‘중앙집권적 공천’으로 귀결된다. 이는 한국 정당 정치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문제다.
특히 전북·전남과 같은 민주당 절대 우세 지역에서는 공천의 의미가 더욱 결정적이다. 사실상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구조에서, 공천 과정의 공정성은 선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해진다.
이 때문에 지역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후보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미 선택된 후보 중에서 고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 인식이 확산될수록 정당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약화된다.
결국 정청래 전 대표의 발언이 불러온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사실 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기억’과 ‘정치적 서술’ 사이의 괴리다.
정치인은 자신의 행위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기록, 증언, 그리고 이해당사자의 체감이다. 이 세 축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떤 선언도 정치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자기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은 검증 가능한 명제가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는 그것을 체감으로 판단한다. 공천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 기회를 얻은 사람,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본 당원들의 기억이 곧 판단의 기준이 된다. 정치는 자기평가로 완결되지 않는다. 언제나 타인의 평가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평가는 기록보다 냉정하고, 기억보다 오래간다.
정청래의 발언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자신의 행적보다 자신의 서술을 더 믿기 시작할 때라는 사실이다.
오운석 기자 info112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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