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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송도松都 말년의 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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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송도松都 말년의 불가사리

이동우 기자 samerain@hanmail.net 입력 2023/09/19 13:28 수정 2023.09.19 13:47

[굿모닝전북=이동우기자]

편집국장/논설위원 李同雨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편집국장/논설위원  정치학박사 李 同 雨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를 ‘한국학중앙원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존재를 빗대어 이르는 속담설화’

이 말은 ‘불가사리 쇠 집어먹듯 한다’라고도 표현한다.

조선 선조 때 대구부사(大邱府使) ‘권문해’(權文海)가 편찬 한 것으로 알려진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의하면 ‘불가사리’는 ‘상상의 짐승으로 곰같이 생겼으며 악몽과 요사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했다.

그 문헌에는 이 속담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말 송도(松都)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수절하던 과부는 삯바느질을 하며 살았다.

어느 날 과부의 몸에 ‘딱정벌레’ 같은 벌레가 기어 다니며 몸을 간질였다. 과부는 벌레를 물리칠 방도로 찾다가 풀잎을 따 주었으나 벌레는 먹지 않았다.

밥을 주어도 먹지 않았고 생선을 주어도 먹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과부는 하던 바느질을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벌레는 과부의 바늘을 냉큼 삼켜버렸다.

과부는 깜짝 놀랐다. 그 후로 이 벌레는 계속해서 집안의 쇠붙이들을 닥치는데로 먹어치웠다. 벌레는 점점 자라 큰 개만큼이나 커졌다.

드디어 공포의 괴물로 둔갑한 이 벌레는 과부의 집을 떠나 이제 온 나라 안을 다니며 쇠붙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피해가 극심해지자 조정(朝廷)에서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 괴물을 잡으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불(火)로도 안 되고 무기로도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괴물을 ‘죽이려 해도 죽일 수도 없다’ 하여 ‘불가사리’(不可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훗날 이 ‘불가사리’가 없어지게 된 계기는 전해오는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느 승려(僧)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야단을 치자 먹었던 쇠붙이들을 모두 쏟아 놓고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한 무인(巫人)의 참언(讖言: 앞일의 길흉화복에 대하여 예언하는 말)이 있은 후 고려가 망하였고, 그와 동시에 극성을 부리던 ‘불가사리’도 함께 사라졌다고 기록한 문헌도 있다.

이는 결국 몰락해 가는 고려 말기의 민심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설화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못된 행패만 부리는 사람 또는 그런 존재’를 가리킬 때,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또는 ‘불가사리 쇠 집어먹듯 한다’는 속담이 쓰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 ‘순열’(筍悅)은 나라가 중병(重病)에 걸리면, “백성들이 공(公)보다 사(私)를 중시하고 사회는 무법(無法)이 판을 치고 일상생활은 사치(奢侈)가 넘치며 위선자(僞善者)들이 정치를 한다”고 했다.

청(淸)나라 말, ‘증국번’(曾國藩)도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모든 일에 흑백(黑白)이 구별되지 않아 악(惡)이 설치고, 선인(善人)이 움츠리고 악인(惡人)은 더욱 악행(惡行)을 주저 없이 하며 결국은 백성이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보면서 ‘송도말년의 불가사리’가 생각나는 것은 필자 만의 감상일까.

 

이동우 기자 samera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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