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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석 기자(사진_굿모닝전북신문) |
[칼럼] 관계성 범죄, 믿었던 인간과 신뢰 붕괴,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는 막장 범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이웃까지. 그 모든 관계의 바탕에는 신뢰(信賴)라는 단어가 깔려 있습니다. 상대를 믿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런데, 그 신뢰를 가장 먼저 깨뜨리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범죄를 ‘관계성 범죄’라고 부릅니다. 처음 듣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데이트 폭력, 스토킹, 가정폭력, 지인 간 성범죄 같은 일들이 모두 관계성 범죄에 포함됩니다.
쉽게 말해, 알고 지내던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범죄입니다. 가해자가 낯선 이가 아니라, 이름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사람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신뢰를 깨뜨리는 범죄 상처는 더 깊고 깊습니다. 가까이 오래도록 지내다 보니 범죄가 터졌을 때는 영혼까지 무너지는 막장 범죄가 됩니다.
관계성 범죄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법을 어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범죄는 ‘사람을 믿는 마음’ 자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단지 폭행이나 협박을 당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저 사람을 믿었을까?”,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같은 생각에 시달리며 사람과의 관계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자존감을 잃고, 심한 경우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됩니다. 상처는 몸보다 마음에 더 오래 남고, 그 고통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번져갑니다.
관계성 범죄는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퍼지는 사회적 피해 범죄입니다. 관계성 범죄는 피해자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에 퍼지는 신뢰의 균열을 만들어 냅니다.
뉴스에서 반복되는 데이트폭력, 가족 간의 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 “괜히 엮이면 나만 손해다.”
결국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고, 관계를 피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는 차갑고 삭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가 문제라면, 관계로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결국 건강한 관계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 마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안전한 공간, 그리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회입니다.
관계성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처벌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예방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람 간의 신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기본 상식으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관게성 범죄라는 말이 더는 낯선 말이 아니어야 합니다. ‘관계성 범죄’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생겨난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처벌보다 더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 용어가 낯설지 않게, 이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게, 우리 모두가 관계 속에서 더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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