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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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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탐구] 제1부 - 닭을 키우던 소년, 대한민국 축산의 역사를 바꾸다

하태웅 기자 ktshtw@hanmail.net 입력 2026/07/02 10:50 수정 2026.07.02 11:43
- 병아리 10마리에서 식품왕국까지
- 김홍국 하림 회장, '한국의 카길'을 꿈꾸는 남자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하는 수직계열화 전략, 삼장시스템

하림 김홍국 회장(사진_하림)

<기업가 탐구> 제1부 - 닭을 키우던 소년, 대한민국 축산의 역사를 바꾸다

 

프롤로그 

굿모닝전북신문은 우리고장 출신 위대한 기업가, 창업가를 찾아 열전을 싣는다. 그 첫번째로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을 톱아본다. 

하림은 김회장이 존경하는 인물 나폴레옹의 강력한 어록 중, "Conquer. or (you will) be conquered!" 가 강력한 멘탈로 면면히 흐르고 있다. 

도전하는 그룹, 셰계를 향한 도전과 응전의 하림그룹은 재계 순위 29위로 성장한 수조원대 기업집단을 이뤄낸 '김홍국의 전설'을 3부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주

 

제1부 : 병아리 10마리에서 하림 창업까지(성장기)
제2부 : 하림을 대한민국 대표 식품기업으로 키운 경영전략과 리더십
제3부 : 성공과 논란, 한국의 카길을 향한 꿈과 미래

 

"성공한 기업인은 시대를 읽는다. 위대한 기업인은 시대를 만든다."  

대한민국 식품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다.
그는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대기업의 후광도 없었다. 정부의 특혜를 등에 업은 기업인도 아니었다. 전북 익산의 평범한 농촌에서 병아리 열 마리를 키우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 그는 사료·축산·식품·유통·물류·해운을 아우르는 하림그룹을 일궜다. 자산 규모 수십조 원의 기업집단을 만든 그의 성공은 단순한 '자수성가 신화'를 넘어 대한민국 축산업의 산업화와 식품산업의 구조 변화를 이끈 사례로 평가된다.

김홍국 회장의 삶은 곧 한국 축산업의 성장사이기도 하다.

병아리 열 마리가 심어준 기업가의 꿈
1957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홍국은 어린 시절부터 도시보다 들판이, 교실보다 축사가 더 익숙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열 마리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병아리를 애완동물처럼 키웠다면, 그는 달랐다. 병아리를 정성껏 키워 시장에 내다 팔았고, 번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그에게 병아리는 장난감이 아니라 자본이었다.

작은 성공은 더 큰 도전을 낳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사육 규모는 수백 마리로 늘었고, 고등학생 무렵에는 수천 마리의 닭과 돼지를 키우는 '학생 축산인'으로 알려졌다. 또래가 대학 진학을 고민할 때 그는 사료비, 폐사율, 시장 가격을 계산하며 사업 감각을 키워 갔다.

농촌에서 배운 경영의 본질
그는 이리농림고등학교에서 축산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이 시기 그는 단순히 가축을 기르는 기술이 아니라 '농업은 과학'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사료 배합, 질병 관리, 생산성 향상 등 체계적인 축산기술을 익히며, 경험에만 의존하던 기존 농업과 차별화된 시각을 갖게 됐다.

특히 4-H 활동은 그의 리더십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협동과 봉사, 책임감을 강조하는 이 활동은 훗날 '현장 중심 경영'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철학으로 이어졌다. 김홍국은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현장은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는 책상이 아니라 농장에서 배운 경영철학의 압축된 표현이다.

스물한 살, 황등농장을 세우다
1978년, 스물한 살의 김홍국은 익산 황등면에 작은 양계장을 세웠다.
이름은 '황등농장'.
지금의 하림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당시 국내 양계산업은 대부분 가족 단위의 영세농이었다. 생산성은 낮았고, 가격은 불안정했다. 닭을 많이 키워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젊은 김홍국은 달랐다. 그는 규모화와 전문화만이 살길이라고 믿었다. 사육시설을 개선하고, 품질 관리와 생산성 향상에 집중했다. 주변에서는 "너무 무리한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시련, 모든 것을 잃다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0년대 초 닭고기 가격이 폭락했다.
사료값은 오르고 판매가격은 떨어졌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젊은 사업가는 사실상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김홍국은 오히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왜 농민은 항상 가격에 휘둘릴까?" 그 답은 단순했다.
농민은 생산만 하고, 이익은 유통과 가공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훗날 하림을 대한민국 대표 식품기업으로 키운 결정적인 출발점이 된다.

닭을 팔지 말고, 산업을 만들자
그는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기존 양계업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닭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산과 도축, 가공, 유통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훗날 하림의 핵심 경쟁력이 된 '삼장(三場) 통합 시스템', 즉 농장-공장-시장을 연결하는 수직계열화 전략의 출발이었다.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당시 국내 축산업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은 모델이었다.

하림의 경영 방향(사진_하림 홈피)
하림의 탄생
1986년 그는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이후 도계시설과 식품가공 공장을 구축하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닭을 살아 있는 상태로 판매하던 시대에서, 위생적으로 가공한 브랜드 닭고기를 공급하는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소비자의 식생활도 변하고 있었다.
외식산업이 성장했고, 치킨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안정적인 원료 공급이 중요해졌다.

김홍국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읽었다.
결국 하림은 국내 최초 수준의 계열화 시스템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며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시대를 읽은 기업가
김홍국 회장의 성공을 단순히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다.

1980년대에는 브랜드 식품의 시대를, 1990년대에는 대형 유통의 시대를, 2000년대에는 종합식품기업의 시대를, 

그리고 2010년대에는 글로벌 곡물과 물류의 시대를 내다봤다.

그는 닭을 본 것이 아니라 식량산업 전체를 바라봤다. 그것이 다른 축산기업과 하림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제1부를 마치며
익산의 작은 양계장에서 출발한 청년은 실패를 통해 산업의 구조를 읽는 기업가로 성장했다. 그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자본이 아니라 '생산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산업 전체를 설계해야 한다'는 통찰이었다.

이 통찰은 훗날 하림을 대한민국 대표 식품기업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하태웅 기자 ktsht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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