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탐구] 2부 - 닭고기 회사가 해운사를 품다
김홍국, '한국의 카길'을 향한 가장 큰 승부수
"좋은 기업은 제품을 만든다. 위대한 기업은 산업의 흐름을 바꾼다."
1980년대 중반, 국내 양계업계는 여전히 영세성과 가격 변동성에 흔들리고 있었다. 닭을 많이 키워도 가격이 폭락하면 농가는 속수무책이었다.
대부분의 양계인은 '생산'만 고민했지만, 김홍국은 달랐다. 그는 생산보다 산업의 구조를 먼저 바라봤다.
당시 김홍국의 머릿속화두는 하나였다. "왜 닭을 키우는 사람은 항상 가난한가."였다. 묻고 또 물었다. 결국 답은 시장 구조속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농가는 닭을 키웠지만 가격은 유통업체가 결정했고, 부가가치는 가공업체가 가져갔다. 생산자는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가장 적은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 마침내 김홍국은 이 구조를 뒤집기로 결심했다.
산업 전체를 설계하다
하림은 처음부터 '닭고기 회사'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김홍국이 구상한 것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였다.
사료회사가 좋은 사료를 만들고, 종계회사가 건강한 병아리를 공급하며, 농장은 안정적으로 사육하고, 도계장에서 위생적으로 가공한 뒤, 물류망을 통해 소비자 식탁까지 전달하는 구조였다.
오늘날에는 익숙한 수직계열화 모델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그는 이를 '농장·공장·시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경영이라 설명했다. 생산과 가공, 유통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함으로써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고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었다.
이 시스템은 이후 하림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됐다.
인수·합병(M&A), 성장의 또 다른 엔진
김홍국은 공장을 짓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필요한 기업은 과감히 인수했다.
사료기업을 확보해 원가 경쟁력을 높였고, 축산기업을 편입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이후 종돈, 양돈, 사료, 가공식품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식품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하림은 닭을 키운 것이 아니라 식품산업의 공급망을 사들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시기 하림의 전략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었다. 모든 인수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식량산업의 전 과정을 연결한다.‘였다.
모두가 반대했던 팬오션 인수
2015년, 김홍국은 재계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린다. 법정관리 중이던 해운회사 팬오션 인수였다.
"닭고기 회사가 왜 배를 사느냐." 비판은 거셌다.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홍국은 이미 세계 식량산업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들은 단순히 식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곡물을 확보하고, 선박으로 운송하며, 항만과 물류를 장악하는 기업들이었다. 미국의 카길, ADM, 번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김홍국은 훗날 "식량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물류 경쟁력"이라는 취지의 경영 철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팬오션 인수는 닭고기 사업의 확장이 아니라 곡물과 물류를 연결하는 전략적 투자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결정은 하림그룹을 종합 식품·물류기업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으로 평가받게 됐다.
| 하림 김흥국 회장(사진_하림) |
HMM 도전, 실패에서도 드러난 승부사 기질
팬오션 성공 이후 김홍국은 또 한 번 큰 도전에 나섰다.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계는 이 시도를 단순한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식량기업이 세계 물류망까지 확보하려는 장기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김홍국의 경영은 늘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전이었다. 단기 실적보다 미래의 산업지형을 먼저 읽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더미식, 식탁으로 들어온 하림
김홍국은 또 한 번 변화를 선택했다. 닭고기를 공급하는 기업에서 소비자 브랜드 기업으로의 전환이었다. '더미식' 브랜드를 통해 즉석밥, 국물요리, 만두, 라면, HMR(가정간편식)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그는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철학 아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이는 B2B 중심 기업에서 B2C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변신을 의미했다.
김홍국 리더십, 무엇이 달랐나
첫째, 현장이 답이다
김홍국은 생산 현장을 가장 중요한 경영회의실로 여긴다.
공장과 농장을 직접 찾고, 생산 공정을 꼼꼼히 살피는 현장 중심의 리더십은 하림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다.
둘째, 실패를 자산으로 만든다
1980년대 가격 폭락은 그에게 좌절이 아니라 사업 모델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는 위기를 '경영 교과서'로 삼았다.
셋째, 10년 뒤를 먼저 본다
팬오션 인수는 오늘의 실적이 아니라 미래 식량산업을 겨냥한 투자였다.
장기적 안목은 그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힌다.
넷째, 공급망 전체를 지배한다
사료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Value Chain)을 통합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계열화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전략이었다.
다섯째, 도전에는 타이밍이 있다
김홍국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경영인이다.
기업이 흔들릴 때 과감히 인수하고, 시장이 불안할 때 투자하는 방식은 하림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여섯째, 지역을 기반으로 세계를 본다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본사를 전북에 두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려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지역 인재 채용과 농가 협력은 하림의 성장 기반이기도 했다.
일곱째, 꿈의 크기가 기업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는 늘 "한국의 카길"을 이야기했다.
많은 이들이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 비전은 하림을 닭고기 회사에서 종합 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나침반이 됐다.
기자의 시선
김홍국 회장의 경영을 이해하려면 '닭'이 아니라 '식량'을 봐야 한다. 그는 축산업자가 아니라 식량산업 전략가에 가까웠다.
그의 모든 선택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 식량산업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가."
팬오션 인수도, 곡물사업 확대도, 더미식 출시도 결국 그 질문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닭고기 판매 1위가 아니다.
곡물과 사료, 축산과 식품, 물류와 해운을 하나로 연결하는 글로벌 식량기업이다.
그 꿈이 완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홍국이 지난 40여 년 동안 국내 축산업의 지형을 바꾼 기업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하태웅기자 ktshtw@hanmail,net
AI 시대를 선도하는 굿모닝전북신문



홈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