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당 전대가 남긴 ‘말의 흉터’…김민석 대표는 이제 그 독부터 걷어내라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후보가 54.08%로 정청래 후보(45.92%)를 눌렀다. 최고위원에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후보가 올랐다. 승부는 끝났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가 쏟아낸 말들은 투표함과 함께 묻히지 않는다. 집권여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의 말은 유통기한이 없다. 앞으로 그가 통합과 품격을 이야기할 때마다,
국민은 물을 것이다. "당신은 며칠 전 동지에게 무슨 말을 했는가." 이번 전대는 정책 경쟁이 아니었다. '누가 더 친명인가'를 겨루는 충성도 경연장이었다. 그리고 그 경연장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로 쓰인 것은 종교, 배신, 윤리위였다.
김민석 후보는 정청래 캠프를 겨냥해 "반명·분열주의·신천지의 3자 연합을 깨야 한다"고 했다. 근거를 묻자 "적절한 시기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집권여당 대표 후보가 경쟁자 주변에 특정 종교집단의 조직적 개입을 암시했다면, 물증은 즉시 나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이것은 의혹 제기가 아니라 상대 지지층 전체를 위험집단으로 낙인찍는 정치적 테러다.
정청래 후보의 반격도 다르지 않았다. "2002년 노무현을 배신하고 정몽준에게 갈 때부터 알아봤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한다." 24년 전의 정치적 선택을 오늘의 인격 문제로 끌어왔다. 여기에 김민석 후보는 "비판해야 할 때 비판하지 못하면 그것도 반명"이라는 논리까지 얹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반명이고, 비판한 사람을 비판하지 않아도 반명이라면, 이 정당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정당은 대통령의 친위대가 아니다. 충성의 강도를 겨루는 순간 정당정치는 끝나고 궁정정치가 시작된다.
두 후보는 윤리위마저 무기로 꺼냈다. 김민석 후보는 "잘못된 계파행위를 한 사람들은 모조리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했고, 정청래 후보는 신천지 의혹을 제기한 김 후보를 "당대표가 되면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맞섰다. 당대표가 되면 상대부터 징계하겠다는 발상이 자연스럽게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당 내부 민주주의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광주 북구을의 '불법 전화방' 의혹까지 등장했다. 당 선관위는 근거 부족으로 기각했지만, 집권당 전대에서 전화방·금품제공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김관영 전 전북지사 제명 과정의 형평성 논란도 다시 소환됐다. 누구는 즉각 제명되고 누구는 소명의 시간을 받았다면, 그 기준을 당은 지금이라도 설명할 책임이 있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따로 있다. 김민석 후보는 "조작기소가 확인되면 공소취소가 원칙"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국가기관의 조작기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과, 현직 대통령 개인 사건의 공소를 집권당이 정치적으로 취소시키는 모양새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는 이제 후보가 아니라 여당 대표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공소를 취소한다'는 인상을 1%라도 남겨서는 안 된다. 독립적 진상확인 절차와 보편적 기준부터 제시하지 않으면,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맞춤형 사법정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4년 중임제 개헌 동의 발언도 같은 함정에 빠졌다. 개헌 자체는 논의할 만하다. 그러나 헌법 제128조 2항은 임기 연장·중임 개헌이 그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그런데도 개헌이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에 누가 더 적극 동조하는가'라는 충성경쟁으로 소비됐다. 개헌은 한 사람의 임기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권력구조를 짜는 일이다.
이번 전대에서 나온 문장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신천지의 3자 연합." "배신자는 또 배신한다." "비판 못하면 반명." "모조리 윤리위에 제소하겠다." 이것이 대한민국 집권여당 지도자들의 언어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
김민석 대표가 지금 할 일은 논공행상이 아니다. 정청래 지지자를 '반명'으로 몰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해야 한다. 신천지 의혹은 자료를 공개하든, 입증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책임 있게 정리해야 한다. 당은 룰부터 손봐야 한다. 근거 없는 종교·범죄·조직개입 의혹 제기는 사후에도 심사 대상이 되도록, 윤리위를 선거보복 수단으로 쓰지 못하도록, 상대의 인격과 충성심을 심판하는 네거티브를 정책비판과 분리하도록 규정을 다시 짜야 한다.
김민석 대표는 총리를 지냈고 이제 여당 대표가 됐다. 권력의 핵심에 두 번 연속 올라선 만큼 책임도 무겁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이재명 대통령에게 얼마나 충성하는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그 길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그것이 대통령을 진짜로 돕는 길이고, 집권당 대표가 존재하는 이유다.
당대표의 첫 시험은 정청래를 이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투표한 45.92%까지 자신의 당원으로 품을 수 있는가다. 그리고 더 큰 시험은, 대통령의 가장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가장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여당 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살벌했던 전당대회가 김민석 신임 대표에게 남긴 진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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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오운석 |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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