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장 칼럼] 반복되는 정읍 산단 화학사고, 무신경한 행정이 불러온 재난의 그림자
정읍 북면 제3일반산업단지가 또다시 유해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얼룩졌다. 지난 8개월 동안 세 차례나 황산과 염산이 누출됐다. 다행히 대형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고의 빈도와 양상을 보면 언제든지 더 큰 재난으로 번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모든 사고의 이면에 정읍시와 관계기관의 무신경과 감독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일 SK넥실리스 공장에서는 옥외 탱크 배관이 터져 황산 40ℓ가 흘러나왔다. 엿새 전에도 한국바이오에너지에서 불이 나 황산 4t이 유출됐다. 불과 지난해 12월에도 에코파크에서 염산 10t이 새어나가 그중 4t이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구조적 부실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읍산단 염산유출 사고, 에어탱크 폭발사고, 신축공장 추락사고, 섬유공장에서 롤러에 끼인 사망사고, 이번 황산 유출사고 등 정읍에사 발생하는 사고 사례는 셀수가 없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허가 시설에서 황산이 다뤄졌다는 사실이다. 한국바이오에너지는 환경부 허가조차 받지 않은 상태로 버젓이 위험물질을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읍시는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공무원이 현장 점검 도중 뒤늦게 황산 탱크를 발견하고서야 문제가 드러났다. 이는 관리·감독 기관이 ‘알아야 할 것을 몰랐다’는 차원을 넘어,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깝다.
시민단체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정읍시민사회연대회의와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20여 단체는 “불법 시설이 산단 안에서 버젓이 운영되는 현실은 관리 사각지대의 민낯”이라며, 전수조사와 불법시설 차단 시스템 구축, 실질적 화학물질안전관리위원회 운영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이미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지적이다. 정읍시와 관계기관은 왜 매번 사고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말할 뿐, 선제적 조치는 하지 못하는가.
군산시는 화학사고가 빈발하자 소방과 협력해 ‘화학물질 방재 장비함’을 설치하고 신속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정읍시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다. 이 대비가 선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의지와 책임감의 문제일 뿐이다.
정읍시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와 감독 부재, 무허가 업체조차 걸러내지 못한 무책임한 근무 자세가 이번 사고들을 키웠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이런 무능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반복되는 화학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곧 ‘행정 재난’이다.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긴밀한 정보 공유, 기업에 대한 강력한 책임 부과, 산단 전수조사와 불법 시설 즉각 폐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읍시 행정이 시민의 안전보다 기업 편의에 무심했던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관리 소홀과 무책임이 불러오는 필연일 뿐이다.”"하인리히 법칙(재앙을 예고하는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 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읍시는 더 이상 '행정 재난성' 사고를 방지하면서 '이제 이 냉혹한 경고를 직시해야'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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