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영일군수(사진_굿모닝전북신문) |
[굿모닝전북신문=오운석 기자] 굿모닝전북신문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14개시군을 발로 거닐며 인물과 자연, 시군의 특수시책 등 취재해 르포형식으로 올릴 예정이다. 오늘은 첫 번쨰 순서로 순창군의 "미스 미스터 순창"이란 이름으로 시작한다. - 편집자 주
[기획르포] 미스&미스터 순창
인물의 향기, 미스터 순창
순창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낯선 여행자에게도 한 가지 분명히 다가오는 기운이 있다. 이 고장은 사람으로 빛난다는 것.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 전국을, 더 나아가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순창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전해진다.
군청 앞마당에 서면 군민들 사이에서 “일 잘하는 군수”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최영일 순창군수 이야기다. 그는 현장을 직접 뛰며 절벽을 깎아 만든 용궐산 하늘길, 발효문화의 심장을 키워낸 발효식품 테마파크를 통해 순창의 가치를 새로 썼다. 군정의 화두는 언제나 ‘실용’이었고, 그 속에 사람을 살피는 눈길이 있었다.
최영일 군수는 군정 곳곳에 ‘실용’과 ‘발효문화’를 심으며 순창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고 있다. 또한 실질적인 성과 중심 행정, 주민과의 강한 소통, 복지 확대 및 인구정책의 혁신, 그리고 중앙 정부 및 국회 대응 능력 등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현장 중심의 리더십과 행정 체험을 통한 신뢰 형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정책 실천력이 두드러 진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군민들의 신뢰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 |
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_자료) |
조금 더 시선을 멀리 돌리면, 순창 구림면에서 태어나 정치의 거센 파도를 헤쳐 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정책의 상징이 되었고, 두 번째 통일부 장관 임명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과거 ‘세계를 구한 영국의 처질 경’이 국무총리를 2회 역임한 역사적 사실과 곂치면서 정 장관의 무한한 애국적 활동을 기대한다. 지역 사람들은 그를 떠올리며, “우리 고향도 나라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긍심을 되새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인 김병로 선생의 강직한 삶도 빼놓을 수 없다. 초대 대법원장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빛나는 건 일제 강점기 변호사로서 보여준 행동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사건을 무료 변론하고, 수감자 가족들의 밥줄까지 챙기던 그의 손길은 결국 자격 박탈이라는 시련을 불러왔다. 그러나 양계와 양돈으로 10여 년을 버텨내며 끝내 ‘법조 삼성(三聖)’이라는 존경의 이름을 얻었다. 국가에서는 독립운동가인 가인의 출생지인 복흥면 하리에 '김병로 기념관'을 건립하고 대법원은 법조인들의 연수시설인 '가인 연수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순창의 산과 물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신경준이 있다. 『산경표』는 백두대간에서 시작해 1정간, 13정맥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산맥 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가 생의 말년에 머문 곳이 순창이라는 사실은, 순창의 산천이 곧 그의 학문적 영감의 뿌리였음을 짐작케 한다. 순창읍 초입에 세워진 신경준 선생 묘지 안내표가 눈에 선하더.
오늘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또 다른 얼굴도 있다. 트로트 가수 강문경. 그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젊은이와 어르신 모두를 사로잡으며 ‘순창의 아들’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청중의 가슴 속에는 자연스레 순창의 이름이 스며든다.
정치, 법조, 학문, 예술. 시대를 달리해도 ‘미스터 순창’들은 변함없이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고향이 작을지라도, 그 품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순창이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1980년 5만 5천여 명에 달하던 인구는 2024년 2만 6천여 명으로 줄었다. 고령화, 청년 유출, 인구 소멸의 위협 속에서 ‘미스터 순창’의 과제는 다시, 미래를 지켜내는 일로 향한다.
자연과 발효의 얼굴, 미스 순창
인물이 순창의 심장이라면, 자연과 발효는 순창의 얼굴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미스 순창’이라는 별칭이 태어난다.
![]() |
순창발효테마파크(사진_자료) |
먼저, 장맛이다. 순창 고추장과 된장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품이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우연히 맛본 순창 고추장에 반해 그때부터 임금께 올리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축제에서는 ‘임금님 진상행렬’이 재현되며, 맛 고을의 자부심을 이어간다.
오늘날 순창의 장류 산업은 과거의 장독대를 넘어 미래의 연구실과 이어지고 있다. 2004년 장류특구 지정 이후, 전통 장맛은 미생물 산업과 결합해 세계적인 발효산업으로 발전했다. 장류박물관과 발효테마파크, 발효소스 동굴까지, 순창의 장맛은 체험과 관광의 이름으로 세계인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간은 늘 같았다. 순창의 미스, 미세스들이 손끝에서 지켜낸 전통의 맛. 바로 그것이 순창 장맛의 뿌리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또한 ‘미스 순창’을 빛낸다. 섬진강의 맑은 물은 고을의 젖줄이었고, 회문산은 호남의 정기와 항일운동의 기개를 품은 산이었다. 강천산은 사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가을이면 ‘호남의 작은 금강산’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 |
강천산 인공폭포(사진_자료) |
용궐산 하늘길에 서면, 발밑은 아찔한 절벽이요 눈앞은 구름이다. 동계면 요강바위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체계산 출렁다리는 스릴 속에 힐링을 준다. 구암산 구암사에 오르면, 백제 승재 스님이 창건했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고, 한때 천 명의 승려가 공부했다는 전설이 고요한 산사에 스며 있다.
순창의 자연은 단순한 풍광이 아니라, 오랜 전설과 정신문화가 함께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다.
희망의 고향, 순창
‘미스&미스터 순창’. 이 이름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인물과 자연, 발효와 전설이 어우러져 빚어낸 순창의 다층적 얼굴을 담고 있다.
군정을 이끄는 실용적 리더십, 평화를 주도하는 정치적 무게감, 전통을 이어온 장맛과 손끝, 그리고 천혜의 산천이 하나로 어우러진 곳.
순창은 과거에도 그러했듯, 앞으로도 희망을 품은 고향으로 남을 것이다. 작은 고을의 골목을 걸을 때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미래를 향해 자라나는 순창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AI 시대를 선도하는 굿모닝전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