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전북신문 9.15 창간 특집] 『조작사회』 에필로그 - 조작의 시대를 넘어 진실의 에피스테메(Episteme)로
우리는 근본적인 정체성적 의문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造作은 과연 언제 기원했는가.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권력 정당화의 수단으로서 '선전(Propaganda)'의 메커니즘을 추적했고, 경제 지표의 착시와 금융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드라이브하는 심리적 구조를 해부했다.
사법 수사가 고전적 차원의 '진실 발견'인가, 혹은 체계화된 '서사의 구성(Construction of Narrative)'인가를 물었다. 언론이 객관적 실재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프레이밍을 통해 현실을 재단하고 선택적으로 양산하는가를 타진했다.
학술 담론이 진리를 지향하는지, 혹은 학문적 권위의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구조인가를 파악했으며, 마침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기술 패러다임과 직면했다.
AI는 우리에게 이전과 차원이 다른 인지적 질문을 던진다. "귀하가 지각하는 실재(Reality)의 진위성을 어떻게 증증할 것인가?“
비용의 역전과 정보 생태계의 교란
우리는 단순히 '거짓말이 횡행하는 시대'가 아닌, '거짓 생산의 임계비용(Marginal Cost)이 극도로 낮아진 정보 생태계'에 살고 있다. 텍스트, 데이터, 이미지, 영상, 심지어 인간의 기억과 신념 체계마저 손쉽게 재구성(Reconstruction)되는 구조적 전환이 일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진실 검증에 소요되는 거래비용'이 '거짓의 생성 및 유포 비용'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명사는 조작의 정교화에 맞서, 검증과 제도적 통제의 기제 역시 발전시켜 온 비대칭적 저항의 역사다.
법치주의, 헌법적 견제와 균형, 언론의 규범적 워치독(Watchdog) 기능, 학술계의 피어 리뷰(Peer Review), 회계 감사 및 민주적 제도적 장치들은 모두 사회적 신뢰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인프라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디지털 포렌식, 데이터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 AI 탐지 알고리즘 및 블록체인 기반 출처 증명 등의 기술적 상호검증 기제로 확장하고 있다.
진실은 단순 선언이나 권위주의적 주장에 의해 정립되지 않는다. 국가원수의 담화, 학자의 정설, 언론의 헤드라인, 심지어 AI의 산출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의 담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치열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의 검증과 비판적 검토, 그리고 시간의 모순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잔여하는 '검증된 입증의 상태'다.
인지적 아노미와 조작학(Manipulology)의 당위성
우리가 경계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는 디스토피아적 가짜뉴스나 딥페이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신뢰 자본의 전면적 해체(Erosion of Trust)'다. 진위 판별이 불가능해진 무차별적 의심의 상태, 즉 Epistemic Nihilism(지식론적 허무주의)에 빠질 때, 사회는 역설적으로 조작의 주체에게 가장 유용한 환경을 제공한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면 거짓에 대한 책임 구명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불신이나 맹목적 신뢰가 아닌, '비판적 검증 의식(Critical Skepticism)'이다. 맹목적 음모론과 무비판적 신뢰는 '검증의 부재'라는 동일한 구조적 결함을 공유한다. 진실 추구의 본질은 그 중간, 즉 "주장하되, 증증하라"는 과학적 태도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조작학(Manipulology)을 제창하는 이유다. 조작학은 특정 주체를 비난하거나 배척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과 판단 왜곡 기제를 구조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검증·보완하는 방법론을 확립하려는 학제적 시도다.
인간학으로의 귀환
조작학의 궁극적 대상은 제도가 아닌, 그 모든 체계의 중심에 있는 '인간'이다. 권력욕, 경제적 유인, 공포와 집단적 동의, 인정 욕구 및 인지적 편향이라는 인간 본성이 존재하는 한 조작은 작동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성적 메타인지(Metacognition)와 비판적 질문 역량을 지닌 존재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신념을 수정(Self-correction)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다.
우리는 타인의 조작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이 수용하고 싶은 서사에는 얼마나 관대했는가? 타인의 주장은 '선동'이라 칭하고,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언사는 '정치적 수사'로 포장하지 않았는가?
진실을 향한 여정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고도의 메타인지적 질문에서 시작된다.
발화자의 지위가 아닌, 객관적 증거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누락된 데이터와 입증되지 않은 전제는 무엇인가?
이 정보의 유포로 이익을 얻는 구조적 수혜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왜 이 정보를 '믿고 싶어' 하는가?
『조작사회』의 결론
우리는 조작과 거짓이 완전히 소멸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작을 감지하고, 거짓을 제도적으로 검증하며, 권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구축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검증하고 성찰하는 '인간의 인지적·윤리적 성숙'이다. 질문이 계속되는 한, 진실을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실재를 진실로 수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사회적 신뢰를 재구성할 것인가?"
| 굿모닝전북신문 로고(사진_굿모닝전북신문) |
[편집부] 〈조작사회〉 10부작 연재를 마치며
- 부족했기에 더 묻겠습니다. 미완이기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굿모닝전북신문은 오는 9월 15일 창간 5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조작사회〉 10부작을 연재했습니다.
우리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정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영상이 무기가 되고, 정치권에서는 말과 여론이 현실을 바꾸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정보가 선택되고, 편집되고, 때로는 왜곡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장면인지.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나의 판단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가 스며든 것인지조차 쉽게 알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굿모닝전북신문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역 언론으로서 작은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가 만들어 놓은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조작사회〉 10부작이었습니다.
정치와 권력, 경제와 언론, 전쟁과 외교, 인간의 욕망과 정보, 그리고 AI와 딥페이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조작'이라는 낯설지만 너무도 익숙한 현상을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10편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편집부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조작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겨우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실도 있을 것이고, 더 깊이 파고들었어야 할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우리의 시선이 부족했고, 어떤 질문에는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연재가 완성된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독자 여러분 앞에 '미완의 질문'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써 내려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질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한 번 더 의심하고,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아무도 묻지 않는 곳에 작은 질문 하나라도 던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언론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편집부 역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 역시 누군가의 정보에 기대어 또 다른 왜곡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독자들에게 더 정확하게, 더 깊이, 더 따뜻하게 다가가고 있는가.
〈조작사회〉를 쓰면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질문했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질문을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굿모닝전북신문은 이번 연재를 마치며 반성합니다.
더 깊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더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때로는 서두르며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짐합니다.
부족했기에 더 공부하겠습니다.
미흡했기에 더 확인하겠습니다.
놓친 것이 있기에 더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미완이기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굿모닝전북신문은 거대한 언론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작은 질문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작은 신문이지만, 누군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며, 보이는 현상 뒤에 숨은 진실을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때로는 실수할 수도 있고, 독자 여러분의 따끔한 지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잘못은 인정하고, 부족한 것은 고치고, 더 나은 언론이 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겠습니다.
언론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향해 가려는 노력만큼은 멈춰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조작사회〉 10부작은 오늘로 일단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진 질문까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뉴스를 볼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영상을 볼 때 한 번 더 확인하며, 누군가의 주장 앞에서 한 번 더 질문하게 된다면 이번 연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사실인가?”
“누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왜 지금 이 이야기가 나오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진실은 늘 우리 앞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짓보다 늦게 오고, 때로는 소란스러운 목소리 속에 묻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 있는 한,
확인하려는 시민이 있는 한,
그리고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언론이 있는 한,
조작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굿모닝전북신문은 이번 〈조작사회〉 연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그 숙제를 가슴에 품고 다시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더 낮은 자세로 독자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더 치열하게 사실을 확인하겠습니다.
더 용기 있게 질문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 여러분의 신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지난 10부작을 함께 읽어주시고, 때로는 공감해주시고, 때로는 부족함을 지적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연재는 끝나지만, 진실을 찾기 위한 굿모닝전북신문의 질문은 끝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9월 6일
굿모닝전북신문 편집부



홈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