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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범죄 포스터, 메시지가 약하다.(사진_대전청) |
[굿모닝전북신문=오운석기자] 또 한 명의 여성이 스토킹 범죄로 희생됐다. 며칠 새 울산, 의정부, 대전에서 스토킹 피해자들이 연달아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인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 제도가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번번이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의 공권력과 검찰의 공권력, 모두가 사후 약방문인가? 아니지 않나, 물론 법제도 미흡이 커서 입법부인 국회도 제대로 성형된 법을 만들지 못헤 스토킹 범죄에 무한한 책임 있다.
현실을 보자. 피해자들은 이미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이다. 신변 보호 요청서를 제출하고, 경찰에게 전자발찌 착용 여부를 물으며, 급박한 순간엔 경찰이 제공한 ‘스마트워치(긴급 호출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치는 범인이 흉기를 꺼내 드는 순간, 아무 의미도 없었다. 피해자가 살해당하거나 중상을 입은 후에야 출동한 경찰은, 늘 그렇듯 사건 현장을 ‘사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이쯤 되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이 모든 제도와 장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왜? 미리 예방할 수단이 없었는가?
전자발찌가 내 생명을 담보해주나, 아니다. 그저 '안심장치' 라 불리어지는 '형식적 감시' 장비일 뿐이다.
전자발찌가 부착되어 있다고 해서 피해자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 장치는 실시간 추적이 아닌 ‘사후 확인용’에 가까우며, 범인이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범행을 저지를 시간은 충분하다. 경보가 울린다 한들, 경찰이 도착하기까지는 최소 수분에서 수십 분이 소요된다. 그 사이 피해자의 생명은 이미 위협당하고, 범죄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진다. 전자발찌의 존재는 피해자에게 어떤 실질적인 보호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통계적으로도 입증되지 않았다.
역시 '긴급 호출 스마트워치'? 도 무용지물, 경찰에 긴급 호출했지만 스토킹범의 범행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찰이 제공하는 ‘신변보호 스마트워치’ 역시 촉박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버튼 하나를 눌러야 하는 시간, 정신이 혼미한 피해자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기기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전제부터가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출동 지연, 위치 오류, 기기 불량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경찰은 여전히 이 장치에 의존해 ‘신변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경찰·검찰, ‘인력 부족’이 면죄부라 생각하는가, 경찰과 검찰은 늘상 “인력이 부족하다”,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적극적 개입을 꺼린다. 피해자 신고 이후에도 접근금지 명령 이행을 확인하거나, 가해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험 예보가 반복되었음에도 방치하고, 범죄 발생 이후에야 현장에 출동해 조서만 꾸미는 현실은 피해자의 고통을 극대화할 뿐이다. 국가 공권력이 이토록 무기력하다면, 누가 국민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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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5년전 개최한 스토킹범죄처벌법 제정 토론회 포스터(사진_자료) |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 더는 늦춰선 안 된다, 촌각을 다퉈 재정해야 한다. 국회와 법무부, 여가부, 경찰청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스토킹처벌법은 ‘반의사불벌죄'는 폐지됐지만, ‘즉시 구속 기준 강화’, ‘피해자 중심 보호조치 확대’ 등 개정이 시급한 지점이 많음에도,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여성가족부는 손을 놓고 있고, 법무부는 형량 조정에만 몰두한 채 실효적 피해자 보호방안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정치권의 무관심, 법제도의 미비, 경찰의 안일함, 이 3박자가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피해자의 죽음이 언론의 단신으로 묻히고, 분노가 일주일 만에 사라진다면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스토킹은 ‘예고된 살인’이고, 이는 사회가 공범인 범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협받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더는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법은 바뀌어야 하고, 경찰은 바뀌어야 하며, 국가의 대응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가 죽어야만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이 순간 구한말 '황성신문'의 주필이던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생각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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