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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문학칼럼] “계절의 끝에서 울음을 건져 올리다 — 김지연의 서정과 그 다음”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6/09/01 11:38 수정 2026.09.01 11:49
계절의 끝에서 울음을 건져 올리다
-자연을 노래하지만 자연에 머무르지 않고, 감정을 말하지만 감정에 안주하지 않아.

해윤 김지연 시인(사진_굿모닝전북신문)

[제천 문학칼럼] “계절의 끝에서 울음을 건져 올리다 — 김지연의 서정과 그 다음”

한국에서 이월은 늘 어딘가 애매한 시간이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이미 봄의 기척이 스며든다. 얼음은 완전히 녹지 않았고 햇살은 조금씩 길어진다. 자연의 시간으로 보면 가장 미묘한 경계선에 놓인 계절이다. 예부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런 감각 때문일 것이다.

해윤 김지연 시인의 「이월소생」은 바로 이 경계의 시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계절을 매개로 감정이 막 태어나기 직전의 순간, 존재의 미세한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얼음꽃 사이로 햇살은 떨어져
겨울새는 점 하나 물들고 나섰다”

이 구절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햇살’보다 ‘점 하나’라는 표현이다. 변화는 대개 거대한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균열, 거의 보이지 않는 색의 번짐처럼 시작된다. 김지연의 시선은 바로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변화의 징후를 감각하는 촉수 같은 시선이다.

이러한 감각은 한국 서정시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다만 결이 조금 다르다.

예컨대 김소월의 시에서 자연은 감정을 담아내는 배경에 가깝다. 「진달래꽃」에서 자연은 이미 완성된 이별의 정서를 받아내는 그릇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로 시작해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 이르는 시적 정서는 이미 확정되어 있고, 자연은 그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반면 백석의 시에서는 자연과 일상이 뒤섞이며 구체적인 삶의 결을 만들어낸다. 그의 시에는 기억과 풍경, 생활의 언어가 함께 흐른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눈이 푹푹 나리는 밤 / 나타샤와 나는 /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라는 구절은 자연 풍경과 연인의 정서를 생활의 언어로 엮어낸 대표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김지연의 시는 이들과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녀의 시에서 자연은 감정을 담는 배경도 아니고, 생활을 재현하는 풍경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막 태어나는 장소, 일종의 실험실에 가깝다.

“눈꽃처럼 피어오르는 아침
수줍게 터지는 눈동자가 있다”

여기서 시선은 외부 풍경에서 내부로 급격히 이동한다. 자연의 개화가 곧 감정의 개화로 이어지고, 그 중심에는 ‘눈동자’가 놓인다. 이 눈동자는 단순히 세계를 바라보는 기관이 아니다. 감정이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김지연의 서정은 분명 현대적이다. 감정은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생성되고, 흔들리고, 어느 순간 터져 나온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의 이미지에서도 이어진다.

“이슬같이 구르는 여정
가느다란 대궁을 붙들 듯
붉은 웃음이 정제되어 있다”

여기서 ‘붉은 웃음’은 단순한 생명력의 상징이라기보다 응축된 감정, 혹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욕망처럼 보인다. 특히 ‘정제되어 있다’는 표현이 눈에 띈다. 감정이 터져 나오기보다 눌리고 다듬어진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억제된 감정이 시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긴장을 한 번에 뒤집는다.

“그날 밤
빨간 분칠을 하고 나서는
소녀의 울음을 보았다”


해윤 김지연 시인(사진_굿모닝전북)

앞에서 등장했던 ‘붉음’이 생명의 색이었다면, 여기서의 ‘빨간 분칠’은 전혀 다른 의미를 띤다. 자연의 색이 아니라 사회가 덧씌운 색이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다.

이 순간 시는 계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존재의 이야기로 이동한다. 자연 속에서 막 피어나던 감정이 사회 속에서 상처로 변하는 장면, 특히 여성의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 겪는 통증이 은근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전환은 김지연 시의 중요한 미학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가 마지막 순간 그것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파괴라기보다 인식의 깊이를 넓히는 장치에 가깝다.

이 점에서 김지연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흐름 위에 서 있으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자연을 노래하지만 자연에 머무르지 않고, 감정을 말하지만 감정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천천히 추적한다.

지금의 김지연은 아직 과장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균열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하나의 감정, 하나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길어 올린다.

이월의 끝에서 그녀는 봄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봄이 오기 직전, 울음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록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서정일지도 모른다.


제천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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