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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노작 홍사용 시인의 '해 저문 나라에' - 오지 않는 '..
(사)K-문학정담

노작 홍사용 시인의 '해 저문 나라에' - 오지 않는 '봄', 꺽이지 않는 '갈구'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3/03/02 11:13 수정 2023.03.05 14:05
- 3.1운동 참여 피체 후 3개월 간 옥고치러
- 짧지만 전주, 강경에서 교편생활도
- 백조에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등 많은 작품 실려

홍사용의 정신(사진_굿모닝전북)

[굿모닝전북=오운석기자] 3.1절 독립운동 기념 행사가 전국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뜻있는 애국지사, 노인, 어린 학생, 문인들까지 국민 누구할 것 없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독립 운동과 독립 투쟁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총칼을 앞 세운 왜경들로 쉽사리 봄은 오지 않았다.

 

당시 1920년대 우리 젊은 문인들, 학생들은 이러한 울분을 문학작품을 통해 삭이고 삭이면서 반드시 봄이 오리라 희망을 품고 살았다.

 

노작 홍사용 시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어린 나이의 휘문의숙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해 왜경에 체포되어 3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백조 원본 복원(사진_굿모닝전북)

석방 후 고향 경기도 화성에 돌아와 정백과 함께 현량개에 은신하며 수필과 시를 쓰면서 보내다, 재종형 홍사중을 설득해 '문화사'를 설립하고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를 기획한다.

 

기획 후 백조만 간행했지만 3호를 끝으로 단명했다.  1923년에는 근대극운동의 선구적 극단인 '토월회'에 가담, 문예부장직을 맡았고, 직접 서양극 번역과 번안, 연출도 맡았다고 한다.

 

1927년에는 박진, 이소연과 '산유화회'를 결성하고, 1930년에는 홍해성, 최승일과 신흥 극단을 조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다 우리 고장 전주에서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근국청년단에 가입해 청년운동을 전개하려다 지병인 폐환으로 47세의 나이에 절명한 애국 시인이다.

 

노작의 시 '해 저문 나라에'를 소개하며 '춘래불사춘'마져 허락되지 않았던 당시의 시 한편 소개한다.

 

홍사용의 해 저문 나라에(제공_ 오난희 영상 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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