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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登 南原 廣寒樓...천만리 장군과 후손 천광록의 시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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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 南原 廣寒樓...천만리 장군과 후손 천광록의 시공을 초월한 교감 詩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1/11/10 15:11 수정 2022.06.09 09:44

천만리장군 유택(사진_굿모닝전북)

[굿모닝전북=오운석기자] ‘굿모닝 전북’은 창간과 함께 ‘천만리(千萬里)* 장군 연구소’를 개설하여 조선으로 이동한 영양 千氏의 조선 내 정착 과정, 후손들의 번성 등 종문 중심 역사적 史實,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출정했던 천만리 장군의 활약상, 조선과 명나라, 일본의 정치적 상황, 천만리 장군 일대기를 연구하고, 아울러 학술대회 및 현장 탐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까지 밝혀내 당시 국제적 역학관계의 사실을 조명하는 공간으로 제공코자 한다. *천만리(千萬里, 1543년 ~ ?)는 명나라의 수위사 겸 총독장(守衛使兼總督將)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전공을 세우고 귀화하여 한국 영양(穎陽) 천씨의 중시조가 된 장군이다. 자는 원지(遠之), 호는 사암(思庵),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묘는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에 있다. 출처 ; 위키백과.-편집자 주-

 

우리 고장 남원 고리봉에 고고한 천만리 장군의 묘역이 있다.

한국지명유래집을 보면 고리봉은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에 위치한 산으로 고도가 710m로 나와있다. 백두대간의 주맥인 덕유산과 영취산에서 맥이 갈라져서 동남쪽으로 천황산과 교룡산에 이르고 그 주맥이 남쪽으로 곧장 뻗어 내려와 문덕봉, 삿갓봉을 이루어 내면서 연달아 솟아오른 봉우리가 산자수려 한 고리봉이다.

고리봉 아래로 펼쳐지는 섬진강 변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과거에 배들이 드나들 정도의 지세로 고리봉이라는 이름이 배를 메어둔 곳이리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천만리 장군의 묘역을 찾아 고리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길로 갈까 하다 맑은 물이 좋아 만학동으로 진입했다. 맥반석으로 넓게 펼쳐진 계곡은 미끌미끌하고 기암괴석이하얀색으로 빛이 나며 물결이 고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오르다 보니 녹차밭이 산길과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경사진 산길을 올라 능선까지 한 두번 쉬면서 걸어 올랐다.

마침내 능선에서 좌측으로 꺾어 한참을 가다보니 너무도 자연스럽고 나지막한 장군의 묘가 있었고 배향하려면 묘역 아래로 툭 떨어진 곳에 내려가야만 했다.

충장공 천만리장군 묘비(사진_굿모닝전북)
왕릉은 아니나 화산군(花山君)이라 칭호를 받은 만큼 거대한 능이 아닐까 추측했던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명나라에서 귀화한 장군의 유택이 청나라 군인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당하면 안 되는 까닥에 비보 차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었다.

가쁜 숨을 가다듬고 높은 묘역 뒤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고리봉을 향해 배향하듯 펼쳐져 있고, 뾰족하고 웅대한 산들이 들쭉날쭉 장엄해 언뜻 보면 천장군 고향의 산세와 닮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 임진·정유란에 조선에 원군으로 출정한 장군의 오랜 타향 생활에 고향 산세를 닮은 산들을 보면서 향수를 달래고픈 마음도 들었으리라. 허리 굽혀 예를 표하고 사진 촬영 후 다시 하산하여 방촌리 입구 환봉서원에 들렸다.

환봉서원(사진_굿모닝전북)
후손들의 정성이 묻어나는 비와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천만리 장군의 시와 그의 후손 천광록 사간원 시평이 써서 나란히 게시해 놓은 시문이다. “登南原 廣寒樓”라는 시가 305년의 세월이 지나 중시조와 후손 간 시운을 따라 댓구 형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정을 나누고 있었다. 천만리 할아버지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 후손이 운을 받아 지어낸 시다. 마치 ‘은행나무 침대 영화’를 보는 듯 환각 속으로 몰아간다.
환봉서원앞 등남원광한루 시문(사진_굿모닝전북)

忠壯公 천만리 장군의 시와 후손 천광록 사간원 시평의 시

등 남원 광한루 - 천만리 장군

어느 해 이곳 누각에 장수 깃발 세웠는가
내가 와서 오르니 때는 바로 초가을이네
깃발 나부끼는 북쪽 변방에 전쟁 기운 조용하고
검 짚고 서니 남쪽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 떠 있네
조용하던 조선에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는데
문물이 우리 중국과 비슷하게 보여 기쁘네
후일 응달진 산골짜기 말 달리며 싸워서
큰 도적을 쳐부수어 해동을 안정 시켜라!

이 시를 보면 광한루에 장수 깃발은 나부끼나 조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북쪽 변방의 전쟁도 소멸되어 남쪽 하늘을 보니 구름이 상서롭고 조선의 문물이 마치 중국과 비슷해 기쁨을 표시하고, 이런 고향처럼 친근한 조선을 위해 왜군을 물리칠 것을 다짐하는 영웅다운 장군의 기개를 내세운 시다

현판에는 총독장 천만리(千萬里) 장군이 1593년 7월 남원 숙성령(宿星嶺) 전투에서 승리하여, 남원성을 수복하는 개가를 올린 유격 송대빈 장군과 총병 사대수 장군을 위무, 축하하고, 남원 광한루에 올라 고국을 생각하며 읊은 詩로 알려져 있다.

(답시) 등 남원 광한루 - 후손 천광록 사간원 시평

충장공 중시조님이 그때에 이 누각에 오르셨네
남기신 시문을 이제야 읊으니 천추의 감회가 드네
장강에 해 저무는데 피리 소리는 귀향의 돛단배 재촉하고
산마루의 상서로운 구름이 멀리 나무 끝에 오른다
새겨진 시문을 살펴 읽어보니 옛적의 글임은 알겠고
물색으로 말하면 바로 중국과도 같겠다.
명나라 가는 길목 환봉사에서 제향 올리고
그쪽으로 가면 바다 건너 중시조님의 고향이네

후손, 천광록 사간원 시평이 1898년 정각에서 천만리 장군의 판상운(板上韻 :현판 시문)을 봉람하고 감격하여 시문의 운자(韻字)를 따라 읊은 시로 중시조 천만리 장군의 명나라 가는 길목 환봉사에서 제를 올린 후 지은 시라고 한다.

조선으로 귀화하여 고국에 대한 애틋함도 있을 테고, 남겨진 가족에 대한 애잔함도 있었으리라. 그러한 천만리 장군의 복잡한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듯 지은 화답 시로 시공을 초월한 핏줄의 당김이야 천륜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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