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부안군, 청렴문화 상징 공간 ‘청렴의 길’ 조성(부안군 제공)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이 조용한 혁신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자결재 시스템도, 예산공개 포털도 아닌, 눈에 보이고 몸으로 지나는 '길'을 통해서다.
부안군청과 돌팍거리 공영주차장을 잇는 통로 한복판에, 청렴을 상징하는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이름하여 ‘청렴의 길’.
군은 이 공간을 단순한 홍보물 전시장이 아니라, 공직자와 군민이 함께 체험하며 스며드는 생활 밀착형 청렴문화 공간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청렴, 말보다 익숙함이 필요하다”
청렴의 길은 '공직자의 청렴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공무원이 가장 자주 오가는 통로, 민원인이 군청에 방문하며 처음 지나치는 공간. 그 길을 청렴의 상징으로 만들어, 스치듯 지나쳐도 가슴에 남는 메시지를 만들자는 취지다.
천장에는 “청렴 부안으로 가는 길”, “오늘도 청렴하게”, “작은 유혹도 거절하는 용기” 등 감각적인 문구가 담긴 배너가 길게 이어진다.
누구든 하루 두세 번은 지나치게 되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메시지와 마주하게 된다.
사진 - 부안군, 청렴문화 상징 공간 ‘청렴의 길’ 조성(부안군 제공) |
부서별 릴레이 보드… “우리 부서의 청렴은 우리가 책임진다”
청렴의 길 한쪽에는 부서별로 자율 운영하는 ‘청렴 실천 보드’가 설치되어 있다.
이 보드는 단순히 상부에서 정한 콘텐츠를 전시하는 게 아니라, 각 부서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다. 포스터, 패러디, 명언, 짧은 드라마 스토리, 4컷 만화까지 형식도 자유롭다.
기획감사실의 청렴 보드는 공직자 행동강령을 활용한 ‘O/X 퀴즈’ 형식으로, 관광과는 관광객 대상의 바가지요금 근절 메시지를 담았다. 주민복지과는 민원 응대 중 유혹과 갈등 상황에서의 올바른 판단을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해 공감을 끌어냈다.
군청 내 한 직원은 “홍보자료 받아 붙이던 과거와 달리, 우리가 만드는 청렴 콘텐츠다 보니 더 진지하게 접근하게 된다”며 “부서별로 ‘누가 더 창의적으로 만들었냐’며 은근한 경쟁도 있다”고 웃었다.
음악으로 스며드는 청렴… ‘청렴 음악방송’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시도는 ‘청렴 음악방송’이다.
군은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 맞춰 군청 스피커로 청렴 관련 오디오 방송을 송출한다. 단순한 공지사항이 아니라, 공직자가 직접 녹음한 사연, 청렴 실천 경험, 선배 공무원의 조언, 명언 등을 담은 짧은 콘텐츠다.
부안군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군수님과 과장급 이상 간부들도 직접 녹음에 참여했다. 일부는 지역 출신 가수가 기부한 배경음악과 함께 방송된다”며 “정서적 메시지로 접근성을 높이고 싶었다”고 밝혔다.
청렴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MZ세대 공무원과 방문 민원인에게 의외로 반응이 좋다.
“청렴 강의보다 음악과 함께 들으니 더 와닿아요”,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청렴 메시지 덕에 괜히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방정부들이 청렴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전남도청은 ‘청렴학교’를 개설해 매월 실무자 대상의 청렴토론을 진행 중이며, 세종시는 청사 내부에 ‘청렴 갤러리’를 조성해 전시형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부안군의 청렴의 길은 ‘통로’라는 일상 공간을 선택하고, 공직자 자율 콘텐츠로 운영하며, 청렴 방송까지 입체적으로 구성한 점에서 가장 생활화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행정학 박사 김모 교수(전북대)는 “청렴문화는 형식보다 반복성과 자율성이 중요하다. 부안군 사례는 외부 강의보다 스스로 익히고 되새기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공간 아닌, 문화로 남을 길
청렴의 길은 일회성 설치가 아니다.
군은 2025년 하반기부터 민원동 진입로까지 공간을 확장하고, 군민 청렴 콘텐츠 공모전을 통해 군민 참여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청소년 대상 견학 프로그램과 연계해 미래세대의 청렴의식 함양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권 군수는 “청렴은 행정의 뿌리이며, 신뢰 행정의 시작점”이라며 “우리의 길 위에서 청렴이 스며들고 확산될 수 있도록 계속 가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청렴은 거창하지 않다. 사무실 벽에 붙인 훈시보다, 매일 걸어야만 하는 길에 숨겨진 문구 한 줄이 더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던 신뢰는 그렇게 발 아래서 자란다. 부안군의 청렴의 길은 지금 그 싹을 틔우고 있다.
최진수 기자 ds4ps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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