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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박균상 칼럼] 언론은 민주사회의 가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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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상 칼럼] 언론은 민주사회의 가늠자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5/04/28 16:14 수정 2025.04.28 16:16

박균상칼럼니스트(사진_굿모닝전북신문)

 [칼럼] 언론은 민주사회의 가늠자


기회주의로 영합하고 권력의 눈치 보고 그런 나라로 갈 건지 아니면 바르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서 그런 나라로 갈 건지? 그 선택의 기로에 박정훈이라는 사람이 서 있다

대한민국이 부패 국가로 전락하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고, 이 사건을 만약에 해병대 박대령에게 유죄를 준다면 우리 사회는 부패 스캔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부패가 시작되면 해방 이후 피와 땀으로 우리가 쌓아올린 경제적 부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참담함을 지켜볼 수 있다. 필리핀 같은 후진국이 되는 거다. 선진국이라는 거 황홀함에 도취되는 그날이 세계 경쟁에서 밀리는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매일 지면을 장식하는 부패의 부유물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윤석열이 내란 수괴는 형사 재판을 중에도 형평성에 어긋난 황제 대접 받고 있다. 탄핵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힘은 전혀 국민에게 사과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과 선을 긋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과 그 특수한 소수의 지지자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행위는 여당으로서, 공당으로서 확장성이 없다’라는 말로 해석된다. 이제 그들은 한국의 동남부 지역 특정 지역에서만 표가 나오고 그 지역의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서 우익 정당들은 소수 지향적 표를 얻어 원내 의석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소수 지향적인 목소리를 살짝 숨기고 민생을 이야기하고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의제를 선수 치면서 의석을 유지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힘은 정당으로써 우익을 유지하는 힘겨운 샅바도 놓아버린 폭력과 패거리 정치의 앞잡이로 목불인견이다. 본래 우익은 사실상 극우 집단에서 훨씬 더 중도층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복지 정책에 진심이어서 중도층의 표심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우익을 굳게 지켰던 국민의 힘은 오히려 반대로 더 오른쪽으로 갔다. 중도에 있었던 보수당이 지금은 완전히 극보수에 쏠리는 바람에 균형이 무너져 버렸다. 한국 정치판은 꺽인 양 날개가 되었다.

원인은 언론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고 편향적 시가으로 사회를 재단해 버린 대가다. 주류 레거시 미디어들도 덩달아 진영논리에 깊숙이 빠져 분별력을 잃었다. 정치적 게임인 양 현상에 매몰되어 버렸다.

요즘처럼 저널리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게 하는 기사가 절실할 때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저널리스트로서 역할을 포기해 버린 지 오래 전이다. 이유는 속해있는 회사와 권력, 자본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많이 왜곡 변질되었다고 본다.

어차피 언론이라는 거는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실 중에 선택해서 알려주는 시공간적 협소한 취재를 전체 사회인 듯 현상만 따옴표 붙여, 실제가 투영되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 존재 한다.

대쪽같은 언론은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와 박근혜 탄핵 테블릿PC 보도가 언론의 워치독 역할를 구현한 가장 좋은 예로 꼽힌다.

최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독립언론 기자들의 명태균 윤석렬 게이트 사건 취재현장에서 활약하는 뉴스토마토 박형관기자 서울의 소리 김영수 기자 등 언론환경이 변화하는 모습은 국격을 다시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주류언론은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으로,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고, 동화되고 기생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을 랩독(Lapdog)들이 왕성하게 사악한 짓을 버리고 있다.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있는 언론. 슬리핑독 (Sleeping dog)도 있다. 취재가 빈약, 기자를 만들어 줄 환경이 빈약, 의지도 없는 이름만 기자들의 집단으로 하여금 지방언론도 초토화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언론은 기회가 있으면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 권력에 편승하고 권력을 지키려 하고 부정부패를 웅호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서도 공격적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말아. 이때 주로 악마의 편집이란 기술을 쓴다.

올바른 지식과 진리는 자발적 언론이 ‘사상의 자유 시장’에 등장해, 자유로운 토의를 거친 결과로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진리에의 도달에 있어서 불가결의 수단이다.

일상 1차원적으로 막 싸우다가 그 현상만 볼 것이 아니라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의제를 던져주는 것도 언론의 역할인데, 우리 언론은 그 의제 설정 기능을 스스로 배제 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예를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치적 대립을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전제에서 벗어나 불법계엄으로 국민을 수렁에 빠뜨렸는데도 불구하고, 양비론적 기사로 본질을 왜곡시키는 현상들은 언론 사회학적으로 악마를 들이는 일이다.

좋은 기사라면 한쪽의 의견이 아닌 사건 당사자의 이야기를 묻고 쓰는 게 원칙이고, 수습 때부터 선배에게 귀에 딱지가 붙도록 익은 충고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언론사가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 표현의 자유는 한참 벗어난 이야기다.

행간을 읽지 못하고 ‘얘가 이랬어요. 둘이 싸운대요’ 이런 표현은 사건을 물타는 악의적 사회를 두둔하는 행태이다. 정확한 보도와 명쾌한 주장이 실종되어 완전히 언론의 수준을 쫙 끌어내려는 일이 현재 진행형에 있다.

 

 

칼럼니스트 박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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