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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수필] 과녁을 두드리는 소리, 마음을 잇는 치유..
문화

[수필] 과녁을 두드리는 소리, 마음을 잇는 치유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5/08/14 15:55 수정 2025.08.14 16:03

수필가 우장식(굿모닝전북신문)

[수필 ] 과녁을 두드리는 소리, 마음을 잇는 치유
                                                                                                                                                                              
초청장을 받아 한궁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출입문을 밀자 광택이 오른 마룻바닥이 조용히 빛났고, 천장 스피커에서는 낮은 안내 방송이 흘렀습니다. 

 

코끝에는 따끈한 차향이 먼저 닿았습니다. 종이컵을 감싼 손바닥에 온기가 번지고, 김이 얇은 실처럼 피어올라 눈앞에서 잠깐 흔들렸습니다. 휘슬이 한 번 울리자, 심중히 던졌던 화살이 가볍게 떨리고, 촉이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 과녁을 퍽퍽 단정한 박자로 두드렸습니다. 고무 밑창이 미끄러지며 내는 삐걱 소리가 스탠드 아래 그늘까지 미세하게 번져갔고, 오가는 안부에 고개가 한 번씩 끄덕여질 때마다 소리와 숨 사이, 모두가 공유하는 평온이 자리였습니다.

 

스탠드 밑 귀퉁이에서 그라운드골프장에서 땀 흘리던 동료들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눈인사를 건네며 손끝을 살짝 들어 올리는 그 순간, 서로가 가까워지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 한 점 떨어지는 소리처럼 아주 작은 진동이 퍼지더니, 갑자기 말의 파문이 경기장 한쪽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한 회원이 모두를 향해 서서 그동안 쌓인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첫마디는 낮았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 목소리는 높이를 바꿨고, 세 번째 문장에서 손이 공중을 가르며 내려올 듯했습니다. 

 

종이컵 뚜껑이 사각 소리를 냈고, 들고 있던 이들이 한 박자 늦게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누군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다른 누군가는 앉은자리에서 몸을 반 뼘쯤 밀어냈습니다. 환풍기는 여느 때처럼 일정한 소음을 냈지만, 그 순간에는 그 소음마저도 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의 말은 길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길게 늘어진 쉼표가 있었습니다. 목젖이 위아래로 한 번씩 움직이고, 오른손 엄지가 왼손 검지마디를 자꾸 문질렀습니다. 곧게 서 있던 어깨는 문장 말미에 내려앉았고, 입술은 말끝마다 단단히 다물렸습니다. 저는 그 틈에서 설명되지 못한 무언가의 무게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치우지 못한 돌멩이 같은 마음, 한밤중에 소똥을 밟은 듯한 기분, 제때 말하지 못해 굳어진 사소한 상처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 아픔이 밖으로 나오는 방식은 종종 서툴고, 때로 불시에 터질 뿐입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말에 반박을 삼키는 이, 고개를 기울여 경청의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는 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조용히 누르는 이.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충분한 설명과 경청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는가. 내 주장만 곧게 세우고 타인의 말을 들을 자리를 비워두지 않으면, 대화는 그 자리에서 끊어집니다. 설득은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공감 없는 말은 방향을 잃고, 강요는 관계의 골을 더 깊게 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익숙한 습관에 기댄 채 벗어나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한쪽만 사회성이 좋아도 마찰은 줄지만, 양쪽이 고집을 세우면 사소한 말끝이 곧장 시비가 됩니다. 오늘의 장면이 그것을 또렷이 보여주었습니다. 말의 높낮이, 발치에 드리운 그림자, 서로의 눈동자에 스친 불편함까지, 그 모든 디테일이 관계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붙든 단어는 ‘치유’였습니다. 치유는 고통이 있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갖습니다. 몸의 병만이 병이 아니듯, 사람 사이에서 오는 통증은 오래 가고 깊게 스밉니다. 방금 전의 폭발도 어쩌면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바깥으로 길을 찾으려 낸 신호였을지 모릅니다. 당혹과 정적이 경기장에 얇은 막처럼 깔렸을 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서둘러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말이 아니라, 조용히 옆자리를 내어주는 마음, “들어볼게요”로 시작하는 태도였습니다.

 

잠시 후 휘슬이 다시 울리고, 화살이 과녁을 잇달아 두드리는 소리가 또렷한 박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박자에 맞춰 한궁 선수들의 발목이 가볍게 튕기고, 관중의 시선이 다시 과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까의 파문이 남긴 잔물결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그에게 다가가 등을 조심스레 두드렸고, 누군가는 물병을 건네며 말없이 눈을 맞췄습니다. 관계는 그렇게, 아주 작은 접촉과 숨 고르기로 다시 길을 찾습니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노력이 균형을 이룰 때, 해답은 한 걸음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의 불협화음은 상처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리고 치유가 어떤 리듬으로 자라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말의 속도를 늦추고, 판단보다 관찰을 먼저 두고, 반박보다 질문을 하나 더 얹는 일. 그 작은 습관이 우리를 다시 이어 줍니다. 서로를 향한 너그러움과 진정한 소통이 길을 열면, 우리는 서로에게 치유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삶은 지금보다 한결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수필가 우장식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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