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10] 농협권력의 그림자-조합장 선거 바꿀 수 있는가 - ⑨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농협 조합장·농협중앙회장 선거 개혁은 농협 개혁의 핵심 과제로 학계와 개혁위원회 모두에서 지목돼 왔다.
금권선거 논란과 반복되는 선거법 위반 사건은 협동조합 거버넌스의 신뢰를 훼손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선거제도 개편은 단순한 규범 정비를 넘어 농협 구조 개혁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조합장 선거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처벌 강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다.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
그동안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형사 처벌과 당선무효를 포함한 제재는 꾸준히 강화돼 왔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 도입 이후 조합장 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 관리 아래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되었고, 금품 제공에 대한 형사처벌과 당선무효 요건도 일반 공직선거 못지않게 강화되었다는 것이 선거법 학자들의 평가다.
그럼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금품 제공, 향응 제공, 매표 행위가 반복되고 있으며, 금권선거 논란 역시 선거 때마다 되살아난다.
이는 “제재 수준만으로는 위탁선거법 체계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법학자 최수봉 등의 지적과도 맞닿아 있다.
이 사실은 한 가지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조합장 선거를 둘러싼 구조와 지역사회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 딜레마
조합장 선거는 규모가 작지만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는, 이른바 “소규모·고이해관계 선거”라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조합원 수는 한정돼 있지만, 조합장이 행사하는 인사·자금·사업 결정 권한은 상당하여 “조합장 1인의 권한 집중”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이 구조는 자연스럽게 선거 경쟁을 과열시키고, 후보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조합원에게 집중·밀착한 선거운동을 하도록 유인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지역 협동조합 선거는 촘촘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가 얽힌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거가 공적 경쟁이 아니라 사적 관계망의 연장선으로 인식될 위험이 크다.
농협·수협·축협 조합장 선거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농자재 공급, 농산물 유통, 금융 서비스 등 지역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자원을 둘러싼 권력 경쟁의 장이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고강도 선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금품이나 접대가 “관행”으로 합리화될 위험이 존재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선물·식사 제공 등이 선거문화의 일부로 용인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제도 개선의 방향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선거법·협동조합 분야 학자들과 농협 개혁 관련 정부·민간 연구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최근 정부와 농협개혁 추진단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조합원 직선제 또는 선거인단제 도입을 검토하면서, 선거비용 보전 제도, 부정선거 자동감시 시스템, 독립적인 감사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선거의 절차와 자금 흐름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선거 과정의 정보 공개, 회계 보고 강화, 외부 감시기구의 상시 모니터링이 금권선거 유인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연구 결과와도 부합한다.
둘째, 조합원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농협중앙회장은 1000명 남짓한 조합장이 선출하는 구조인데, 이를 일반 조합원 직선제나 넓은 범위의 선거인단제로 전환하면 투표자 수가 늘어나 금권선거의 비용·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효과는 분산된다.
실제로 선거 연구자들은 “유권자 수가 제한된 간선·소선거구 구조일수록 금권·인맥 선거로 기울 위험이 크다”고 지적해 왔다.
셋째, 선거 관리와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위탁선거법 연구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전문성·독립성을 높이고, 위탁선거에 특화된 교육·홍보, 상시적인 위반행위 신고·보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정부가 농협 감사위원회(가칭)를 별도 특수법인으로 설치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구상 역시, 선거와 일상 경영 전반에 대한 감시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또한 학자들과 실무자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문화의 변화가 핵심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 7대 원칙 가운데 제2원칙인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를 협동조합 거버넌스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이 지침서는 조합원이 선거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선출된 대표자에 대해 책임을 요구할 때에만 협동조합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협동조합은 제도보다 문화가 중요한 조직이다.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인식과 “공동의 자원을 사적으로 거래하지 않는다”는 규범이 자리 잡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내외 협동조합 연구자의 공통된 분석이다.
결국 금권선거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법 조항이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의 선택과 참여라는 점이다.
투표는 권리이면서 책임이다.
조합원들이 “돈보다 정책과 운영 능력”을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하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며, 선거 이후에도 조합장을 감시·평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선거 문화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지역사회 역시 “이번 한 번쯤은 괜찮다”는 관행적 사고에서 벗어나, 금품·향응 제공을 명백한 규범 위반으로 인식하는 공적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조합장 선거는 바뀔 수 있는가.
선거제도, 처벌 규정, 내부 통제 장치 등 법·제도의 개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어 왔다.
그만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법과 제도를 넘어 조합원과 지역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협동조합의 미래는, 그리고 농협 개혁의 성공 여부는 결국 조합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학계와 현장은 “제도 개혁과 조합원 민주주의 문화가 함께 갈 때에만, 조합장 선거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뀔 수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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