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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제천문학칼럼] 추억의 온기와 봄의 약속 — 문청 오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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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학칼럼] 추억의 온기와 봄의 약속 — 문청 오난희 「옛 시절」과 박목원 「4월이 오면」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6/04/10 16:32 수정 2026.04.11 12:20

박목월, 오난희 시인(사진_나무위키, 문청)

[제천문학칼럼] 추억의 온기와 봄의 약속 — 문청 오난희 「옛 시절」과 박목월 「4월이 오면」

시를 읽는 일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과 닮아 있다. 어떤 시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 어떤 시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청 오난희의 시 「옛 시절」과 박목월의 「4월이 오면」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나는 추억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계절을 통해 희망을 기다린다.

옛 시절 / 문청오난희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며
김이 모락모락 추억이 움직인다

언제 즈음 일까... 붉은 장미가 붉게 타오른 오월도
아카시아 향기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추억이
옛 시절 고향 향기만 할까...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시절
사락사락 꿈이 생겨나고
어여쁜 소녀가
꿈 많은 소년이
이제 중년에 문턱에 서 있을 줄이야

옛 시절
눈 감으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추억이
새록새록 마음이 우울할 때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행복한 미소로 화답한다

먼저 문청 오난희의 「옛 시절」은 매우 소박한 일상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며
김이 모락모락 추억이 움직인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가마솥은 단순한 부엌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농촌의 생활과 가족 공동체의 기억을 상징하는 사물이다.

어린 시절의 부엌, 어머니의 손길, 따뜻한 밥 냄새와 같은 기억들이 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 담겨 있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각적 묘사를 넘어, 마음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의 움직임을 형상화한다. 현실의 장면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각적 이미지의 사용이다.
"붉은 장미가 붉게 타오른 오월도
아카시아 향기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추억"이
여기에는 시각과 후각의 이미지가 동시에 등장한다. 오월의 장미는 색채의 강렬함을 보여주고, 아카시아 향기는 기억을 불러오는 감각적 매개가 된다.

특히 향기는 인간의 기억을 가장 강하게 환기시키는 감각 중 하나다. 그래서 시 속의 아카시아 향기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향수와 추억을 상징하는 정서적 장치가 된다.

이 시는 짧은 분량 속에서 인간 생애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어여쁜 소녀가
꿈많은 소년이
이제 중년에 문턱에 서 있을 줄이야"
이 대목에는 세월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소년과 소녀의 시간은 이미 멀어져 있고 우리는 중년의 문턱에 서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비극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은 현재의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마음이 우울할 때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행복한 미소로 화답한다."
이 시에서 추억은 단순한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치유하는 힘이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억의 온기로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옛 시절」은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보다 개인의 삶과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낸 생활 서정시이자 향수의 시라 할 수 있다.

사월의 노래 / 박목월(본명 영종)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반면 박목월의 「4월이 오면」은 시간의 방향이 전혀 다르다. 이 시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보다는 다가올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한다. 여기서 4월은 단순한 달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겨울을 지나 다시 생명이 피어나는 봄의 상징적 시간이다. 봄은 자연의 회복을 의미하고, 동시에 인간 마음의 회복을 상징한다. 겨울을 견딘 자연이 꽃을 피우듯이 인간의 삶도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이 시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4월이 오면」의 정서는 기다림과 희망, 그리고 생명의 부활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두 시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옛 시절」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시라면, 「4월이 오면」은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는 시다. 하나는 기억의 온기로 현재를 위로하고, 다른 하나는 봄의 빛으로 미래를 밝힌다.

또한 시적 공간 역시 다르다. 「옛 시절」이 부엌과 고향의 생활 공간에서 시작하는 내면적 서정시라면, 「4월이 오면」은 자연과 계절을 배경으로 하는 상징적 서정시다. 하나는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하고, 다른 하나는 자연의 순환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두 시는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추억은 마음을 위로하고, 계절은 다시 희망을 약속한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현재의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우리는 때로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또 어떤 날에는 다가올 봄을 기다린다. 그래서 시는 늘 시간의 두 방향 사이에서 우리 곁에 머문다. 지나온 시간을 따뜻하게 만들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서정시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제천 오운석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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