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전북신문=최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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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25년 고창군 찾아가는 주민참여예산학교에 참여한 핵생들(고창군 제공)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이 청소년을 지역 발전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들이 예산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자치 실험에 나섰다. 고창군은 최근 고창군청소년수련관에서 관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청소년 주민참여예산학교’를 개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교육은 고창군 청소년참여기구 소속 청소년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참여자는 고창군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수련관 운영위원회, 문화의집 운영위원회 등에서 활동 중인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됐으며, 실질적인 예산 편성 참여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전국적으로도 주목받는 사례다.
특히 이번 참여예산학교는 단순한 이론 교육이 아닌, 청소년이 일상에서 느낀 불편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실습 중심으로 기획됐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학교 근처에 청소년 전용 쉼터가 부족하다’, ‘면 단위 대중교통 시간표가 불편하다’, ‘지역 내 문화체험 공간이 협소하다’ 등 구체적인 문제를 도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예산 제안서 형식으로 작성했다.
실습 중심, 청소년 맞춤형 예산교육…“주민참여예산, 말로만 듣던 것이 아니었다”
이날 교육을 진행한 강사는 주민참여예산 전문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의 최승우 강사다. 최 강사는 전국 다수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 교육을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고창 청소년들에게도 실질적인 재정 감수성과 정책 접근 역량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최 강사는 “예산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가장 구체적인 계획서”라며 “청소년들이 정책 주체로 성장하려면 어릴 때부터 예산에 대한 주도권과 감수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기초 이해: 예산의 정의,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한 이론 교육
문제 발굴: 생활 속 불편함을 바탕으로 문제 정의 및 해결 아이디어 도출
예산 제안서 작성 실습: 실제 주민참여예산 제안서 양식을 기반으로, 정책화 가능한 사업으로 정리
특히 청소년들이 작성한 제안서는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 고창군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정식 접수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심사를 통과한 제안은 2026년도 고창군 예산 편성 시 실제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청소년 예산참여, ‘형식적 참여’ 넘어 ‘실질적 참여’로
그동안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성인 주민 중심으로 운영되며, 청소년은 참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설문조사나 의견수렴 창구는 존재했으나, 이들의 의견이 예산 편성과 사업 추진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는 사실상 미비했다. 고창군의 이번 참여예산학교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험이자 도전이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청소년은 고창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사회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의 참신한 시각과 경험은 행정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의 의견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제안사업의 적격성과 필요성을 검토해 2026년도 예산에 반영하는 절차를 충실히 따르겠다”며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참여, 들러리가 아닌 주역으로 청소년을 대우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은 정책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고창형 자치교육 모델로 확산될까
현재 전국적으로 청소년 대상 예산 교육은 일부 광역 지자체 또는 청소년 자치조례가 정비된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고창군의 시도는 기존 청소년 예산교육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째, 교육의 질이다. 단순한 강의식 교육이 아닌, 체계적인 실습과 피드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실제 예산 제안서 작성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교육 효과가 높았다.
둘째, 제안서 반영 가능성이다. 고창군은 청소년이 작성한 제안서를 실질적인 예산 반영 대상으로 삼겠다고 명시했다. 이는 타 지자체의 형식적 운영과는 차별화된 대목이다.
셋째, 지속가능한 구조 마련이다. 고창군은 향후 청소년참여위원회 및 청소년수련시설 운영위원회 활동과 연계해, 청소년 주민참여예산 교육을 정례화하고 확대할 방침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청소년 참여 확대를 넘어, 지역사회 전반에 걸쳐 ‘참여 자치’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청소년이 예산을 고민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집행 결과를 평가하는 구조 속에서 자라난다면, 이들은 향후 어떤 위치에 있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정치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치의 씨앗을 심다
고창군의 이번 시도는 예산 민주주의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사례다. 예산이 곧 정책이고, 정책은 삶이며, 삶은 참여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청소년의 예산 참여는 단순한 행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근간을 다지는 교육 행위다.
아직도 많은 지자체는 청소년을 ‘정치적 고려 대상’으로만 인식하거나, 단기적인 이벤트 중심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고창군은 형식보다 본질을 택했다. 이 점에서 고창형 주민참여예산학교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투자이자,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수업이다.
앞으로도 고창군이 청소년과 함께 만들어갈 예산의 미래, 정책의 미래, 자치의 미래가 기대된다.
최진수 기자 ds4ps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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