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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엽 전 완주군수(사진_AI이미지 연출) |
[제천칼럼] 전북 정치권의 ‘가장 고독한 사내’ — 임정엽에게 경선의 문을 열어라
전북 정치권에 요즘 묘한 정적이 흐른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보통 정치판은 더 시끄러워지고 더 뜨거워지기 마련인데, 어떤 이름 앞에서는 오히려 침묵과 거리두기가 더 두드러진다.
그 이름이 바로 임정엽이다.
전북 정치권에서 그는 요즘 “가장 고독한 사내”라는 말로 회자된다.
정치판에서 고독은 낯선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고독은 단순한 정치적 외로움이라기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정치적
고립에 가깝다는 점에서 더 씁쓸하다.
그는 여전히 강한 체력과 배짱을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주변에서는 “헤라클레스 같은 멘탈과 의지력”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그럼에도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달리기를 준비한 선수가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채 트랙 밖에 서 있는 상황과 닮아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단순하다.
경쟁은 막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는 것이다.
당으로 복당해 다시 뛰고 싶다는 선수가 있다면, 그리고 국민적 지탄을 받을 중대한 하자나 정치적 커다란 결격 사유가 없다면,
정당은 원칙적으로 경쟁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 상식이다. 정당이 해야 할 일은 선수의 출전을 막는 일이 아니라
공정한 경기장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소아적인 정치적 계산이나 정적 제거의 논리,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의 방해가 작동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을 막는 문제가 아니라 전주시민과 전북도민의 선택권을 빼앗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장면도 있다.
만약 누군가 그 ‘고독한 사내’를 찾아가 선거 지원을 부탁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경기장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밖에서 응원만 하라는 요청은 정치적 예의도 아니고 공정도 아니다.
정치인은 결국 경기장에서 평가받는 존재다.
건각의 소유자, 튼튼하게 뛰는 심장과 승부사의 베짱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정치라는 링 위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정치인이 외부적 규제와 비합리적 룰에 갇힌 맹수처럼 우리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비극이다.
지금 전주는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런데 정치의 계절은 어딘가 서글픈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그 고독한 사내가 시지프스처럼 무심히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오르는 장면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묻는다.
정치는 왜 이렇게까지 좁아졌는가.
경쟁은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이 되었는가.
시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정치적 배제의 드라마가 아니라 활기찬 경기와 정정당당한 승부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다만 페어플레이의 경기가 펼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고독한 사내를 경기장으로 불러내라.
그리고 시민 앞에서 뛰게 하라.
그것이 정치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다.
시인 정지용의 시 「구성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꽃들도 귀양살고 바위(유성)가 유배된 곳.”
부디 전주가 그런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꽃이 귀양살고 바위가 유배되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경쟁하고 시민이 판단하는 도시이기를 바란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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