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세상] 승합차에 실려 온 표가 민주주의 '꽃'인가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질병이 있다. 바로 '집단 실어 나르기'다.
어르신을 위한다는 명분, 교통편의를 제공한다는 핑계, 거동이 불편하니 도와드린다는 그럴듯한 이유 뒤에는 때때로 조직표를 만들어 선거 결과를 왜곡하려는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주간보호센터 차량이 어르신들을 집단으로 투표소에 이동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돼 선관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위법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특정 후보나 선거캠프의 지시, 묵인, 공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는 단순한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조직적 테러다. 투표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다.
그런데 특정 조직이 노인복지시설, 요양시설, 마을조직, 향우회, 종교단체 등을 동원해 승합차에 유권자를 태우고 투표소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자유의사가 아닌 조직의 의사가 개입될 위험이 크다. 특히 고령층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정 세력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된다면 이는 어르신 복지가 아니라 어르신을 정치도구로 전락시키는 비열한 행위다.
공직선거법 제230조는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금품·향응·교통편의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승합차 한 대가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산어촌 지역이나 고령화 지역에서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조직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만약 후보자가 이를 알고도 묵인했거나 직접 지시했다면 단순 벌금 몇 푼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그 후보는 민주주의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당선 이후라도 당선무효는 물론 정치생명 자체가 끝날 정도의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거범죄 가운데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침해하는 범죄는 살인적인 파괴력을 가진다. 표를 돈으로 사고, 밥으로 사고, 차량으로 사고, 조직으로 강요하는 순간 선거는 끝난다.
그때부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동원정치이고 봉건정치다. 특히 전북을 비롯한 농촌지역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마을회관, 경로당, 복지시설, 이장·통장 조직, 각종 단체를 둘러싼 잡음이 반복된다.
차만 태워줬다고? 어르신들 편의를 봐준 거라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수십 년 동안 반복된 변명일 뿐이죠.
부디, '휠체어를 말어주는 손 길이 투표용지까지 대신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범죄는 늘 친절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선관위와 경찰은 이번 의혹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이번 의혹을 단순 선거 민원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만약 특정 후보 또는 선거캠프의 조직적 지시와 개입이 확인된다면 관련자 전원을 엄벌하고 당선여부 불문하고 후보자에게도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차량 운행을 누가 지시했는지, 비용은 누가 부담했는지, 특정 후보와 연결고리는 없는지, 조직적 동원이 있었는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
만약 특정 후보의 기획과 지시가 확인된다면 국민은 단호한 처벌을 요구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훔친 사람에게는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적 퇴장이 기다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선거는 승합차가 아니라 국민의 양심이 결정해야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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