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통령 기자회견(사진_AI편집) |
[기자수첩] 대통령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까닭은?
지난 18일 청와대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은 약 100분 동안 앉지 않고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152명의 내외신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14개의 질문에 답했다. 평소의 농담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첫머리에서 “언제나 국민은 옳다”,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몸을 낮췄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자세와 표정은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의 ‘100분 스탠딩 회견’은 최근의 민심을 대통령 스스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래 서 있는 모습도,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아니다. 국정이 정말 달라지는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을 다섯 가지로 압축하면 대통령의 고민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는 민심 이반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이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직면해 당황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작은 성과와 국민의 큰 성원 앞에서 두려움과 겸손이 줄었다고도 인정했다. 대통령이 국정의 문제를 야당이나 언론, 관료들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부터 언급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사과는 출발점일 뿐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반성문을 읽기 위해 투표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을 나아지게 해 달라고 권력을 맡긴 것이다.
둘째는 개혁 후퇴가 아니라 개혁 방식의 수정이다.
이 대통령은 개혁 과정에서 선명성만 강조하다가는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비롯한 핵심 국정 방향 자체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과정과 방법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나아갈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정치적 고민이 숨어 있다.
개혁의 속도를 높이면 중도층의 반발을 살 수 있고, 속도를 낮추면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개혁 후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의 숙제는 개혁의 강도가 아니라 개혁의 정교함이다.
밀어붙이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다.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하고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개혁이다.
셋째는 연임 개헌과 공소취소 논란에 직접 선을 그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조작기소 의혹 특검을 둘러싼 공소취소 논란에 대해서도 기존 기소사건의 이송·처분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진상규명에 집중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목이다.
개헌이 대통령 개인의 권력 연장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는 순간 개헌 논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 문제를 분리했다면 이제 국회가 답할 차례다. 1987년 체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 대통령과 국회·지방정부의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국민 기본권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가 논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넷째는 부동산에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것을 정부의 중심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 정부는 한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국토균형발전과 함께 서울을 경제수도, 세종을 행정수도로 하는 구상도 내놓았다.
문제는 부동산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값, 전세, 대출, 공급, 금리, 세금은 서로 맞물려 있다. 특히 서민과 청년에게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강남 아파트 가격 몇 억 원의 등락이 아니다.
“내가 월급을 모아 집을 살 희망이 있는지”, “내 아이가 결혼해 독립할 수 있는지”,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섯째는 ‘민생·개혁·통합’이라는 새로운 삼각형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민생 대통령, 개혁 대통령, 통합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세 단어 모두 옳다. 하지만 동시에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개혁에는 충돌이 따른다. 통합에는 양보가 필요하다. 민생에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의 국정운영이 중요하다. 여당도 함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대통령 혼자 자세를 낮춘다고 국정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대통령과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었다며 당 역시 더 겸손하게 경청하고 민생을 살피겠다는 취지로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회견에서 대통령의 민생·개혁·통합 의지가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대통령은 통합을 말하는데 여당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은 경청을 말하는데 국회에서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를 이야기하는데 인사와 입법에서 논란이 반복된다면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하루짜리 정치 이벤트로 끝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변화만큼 집권당의 변화도 필요하다. 야당도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의힘은 이번 회견에 대해 실질적인 국정기조 변화가 없다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야권에서는 인사와 공소취소 논란 등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야당의 비판은 민주주의에 필요하다.
그러나 야당 역시 질문을 받아야 한다. 정부가 잘못하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부동산은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
자영업자는 어떻게 살릴 것인가.
청년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검찰과 경찰의 권력은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비판과 대안이 함께 갈 때 야당의 목소리에도 힘이 생긴다.
진보도 보수도 대통령의 ‘결과’를 보라
이번 회견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여권과 진보 진영에서는 대통령이 민심 이반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개혁과 통합을 동시에 강조한 점을 주목한다. 반면 보수와 야권에서는 말과 태도의 변화보다 정책과 인사의 실질적인 변화가 먼저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정치권의 반응도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대통령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기준이 진보와 보수만이어서는 곤란하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장사가 안 되는 식당 주인에게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대출이 막힌 소상공인에게 진영이 무슨 의미인가.
취업하지 못한 청년에게 여야의 정치적 승패가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결국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결과’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대통령이 “모두 저의 부족함”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아니다. 그 다음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부족함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인사를 바꿀 것인가.
정책 결정 방식을 바꿀 것인가.
여당과의 관계를 바꿀 것인가. 야당과 대화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바꿀 것인가.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지지율이 떨어질 때가 아니다.
국민의 경고를 듣고도 달라지지 않을 때다.
9월 18일의 100분 기자회견은 이재명 정부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웃음기를 지웠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대통령의 표정이 달라졌다고 국민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집값과 전월세 부담이 줄어드는지, 소상공인의 숨통이 트이는지,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는지,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맞아지는지, 권력기관 개혁이 또 다른 거대 권력기관을 만들어내지 않는지를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다면 국민은 평가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말했다.
“언제나 국민은 옳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국민에게 다시 설명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정치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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