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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앞의 平等을 말하려면, 먼저 법의 公正부터 묻자”..
오피니언

“法 앞의 平等을 말하려면, 먼저 법의 公正부터 묻자”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6/02/15 16:51 수정 2026.02.15 17:06
- 검찰의 선택적 정의, 사법부의 정치적 침묵, 권력자 주변에 대한 면죄부 관행까지 함께 끊어내야

 

사법개혁, 정의와 공정(사진_굿모닝전북신문)

 

[사설] “法 앞의 平等을 말하려면, 먼저 법의 公正부터 묻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의 속개를 촉구했다. 언 듯 겉만 보면 ‘법치주의 수호’라는 명분이다. 그러나 지금 이 발언이 던져진 정치적 맥락을 떼어놓고 보면, 이는 법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요구라기보다, 선택적 정의를 강요하는 정치적 압박에 가깝다.

윤석열 정권 시절 사법과 수사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민주당 인사들에 대해서는 전방위적 압수수색, 장기 수사,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가 반복됐던 반면, 김건희 여사와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지연, 소극적 수사, 무혐의·각하 처리, 사실상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수수, 인사·청탁 개입 의혹 등 굵직한 사안들마다 “증거 부족”, “혐의 불충분”이라는 결론이 반복됐고, 그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런 전력이 쌓인 상황에서, 특정 정치인의 재판 속개만을 콕 집어 촉구하는 행위는 ‘법 앞의 평등’을 말하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법을 호출하는 태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는 상대에게만 엄격할 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와 그 주변부터 예외 없이 적용될 때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책임 논란도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12.3 내란 사태 당시, 사법부 수장으로서 민주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보다 분명한 메시지와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법부의 ‘부작위’는 때로 명시적 가담 못지않게 역사적 책임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럼에도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의 압박에 휘둘리듯 특정 재판을 ‘지금 당장 하라’는 요구를 받는 모습은 사법부의 독립성 자체를 훼손하는 장면으로 비칠 위험이 크다.

장동혁 대표 개인의 정치적 행보 역시 이러한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전두환·박정희식 권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발언들, 극우적 레토릭에 기대는 정치 언어, 황교안식 강경 노선을 연상시키는 투쟁 정치가 반복되어 왔다. 이런 정치인이 “법치”를 앞세울 때, 많은 국민은 그것을 원칙의 외침이 아니라 진영 정치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대통령이라 해서 재판에서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된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그 전제가 충족되려면, 그 ‘법’ 자체가 공정하게 작동해 왔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 시절 드러난 선택적 수사, 편향된 기소, 권력자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야권 출신 대통령의 재판만을 문제 삼는 것은 공정의 요구가 아니라 불공정의 연장일 수 있다. 진짜 법치주의는 정적의 재판을 독촉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검찰의 선택적 정의, 사법부의 정치적 침묵, 권력자 주변에 대한 면죄부 관행까지 함께 끊어내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을 하라”는 외침은 정의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의 도구로 전락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인물의 재판 속개를 재촉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의 유불리를 가리지 않는 사법 개혁과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일관된 요구다.

법치를 말하려면, 먼저 그 법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작동했는지부터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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