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칼럼] “경찰이 판·검·대법·헌재 위의 기관?” — 과장된 포비아로 들춰내는 선동술(煽動術)
최근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법왜곡죄’ 심의 과정에서, 법왜곡죄 반대표를 던지면서 “경찰, 판검사-대법-헌재 위의 기관될 것”이라는 취지의 SNS 내용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라는 상징성까지 겹치며 정치적 해석이 더해지고 있다.
그러나 법의 내용과 권력구조를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 발언은 지나치게 비약적이며, 자칫 경찰 전체를 ‘권력 찬탈의 주체’처럼 묘사하는 위험한 프레임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
법왜곡죄의 취지는 당연히 ‘위에 서게 하려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왜곡죄는 판사·검사가 직무상 고의로 법을 왜곡해 부당한 판결이나 처분을 내릴 경우 형사책임을 묻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경찰 수사 역시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는 사법권을 침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사법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 장치다.
입법 취지는 “누가 누구 위에 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 행사에 책임을 묻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삼권분립 체계에서 판사와 검사는 헌법상 독립성이 보장된다. 그러나 독립이 면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과 책임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법왜곡죄는 이 ‘책임의 영역’을 법률로 구체화하려는 시도다.
경찰이 판검사-대법-헌재 위의 기관될 것이란 말, 구조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가? 곽 의원의 발언은 “경찰이 판사·검사를 수사하게 되면 위계질서가 뒤바뀐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형사사법 체계는 본질적으로 상호 견제 구조다.
경찰은 수사를 담당하지만,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한다. 물론 검찰이 해체되면 기소청이 결정한다. 법원의 판단은 최종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른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 또한 검찰·법원에 의해 통제받는다. 즉, 경찰이 수사를 한다고 해서 ‘위에 선다’는 표현은 법적 위상과 기능을 혼동한 주장이다. 수사는 권력의 서열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범죄 여부를 규명하는 절차일 뿐이다.
더구나 판사·검사에 대한 수사 역시 영장, 증거능력, 공소유지 등 복합적 통제를 거쳐야 한다. 경찰이 일방적으로 사법부를 장악하는 구조는 제도적으로 설계돼 있지 않다. 경찰을 향한 불신 프레임, 또는 하극상 형태의 선동은 또 다른 권위주의 아닌가?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면 곧바로 ‘사법부 위에 군림한다’는 식의 주장은, 경찰을 잠재적 권력 남용 집단으로 규정하는 선입견을 전제로 한다. 물론 경찰 역시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경찰은 국가수사본부 체제, 수사심의위원회, 외부 통제장치 등 다층적 견제를 받고 있다.
경찰을 통제 불능의 권력처럼 묘사하는 것은 또 다른 엘리트 중심적 사고일 뿐이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특정 직역을 과도하게 방어하는 논리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진짜 논쟁은 ‘수사권 남용 방지 장치’일 뿐이다. 법왜곡죄를 둘러싼 논쟁은 “경찰이 위에 서느냐”가 아니라, 수사권 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와 정치적 수사로 변질되지 않도록 어떤 안전장치를 둘 것인가, 사법 독립과 형사책임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우려가 있다면, 경찰 단독 수사가 아닌 특수전담기구나 합동수사 체계, 엄격한 기소 요건 등을 논의하면 된다. 제도 보완의 문제를 ‘권력 서열 전복’이라는 공포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것은 건설적 토론이 아니다.
곽의원은 경찰 포비아 논리로 현혹시키기 보다 보편 타당한 논리로 설득해야 정당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권력기관은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권력기관 간 견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의 이름이 소환되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균형과 책임의 관점에서 논쟁을 이끌어야 한다. ‘경찰이 판사 위에 선다’는 표현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수는 있으나, 법체계 현실을 설명하는 정확한 진단은 아니다.
끝으로, 법왜곡죄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계속 다듬어야 할 입법 과제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경찰이 사법부 위에 군림한다’는 식의 발언은 지나친 비약이다. 민주주의는 권한을 나누는 체제이지, 누가 더 위에 서느냐를 다투는 서열 체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직역의 위신이 아니라, 법 앞의 책임과 시민의 권리다.
공포를 자극하는 언어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와 차분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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