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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巴里長書(독립청원서) 소개 - 1부..
문화

巴里長書(독립청원서) 소개 - 1부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6/03/02 10:59 수정 2026.03.02 11:28
-1919년, 유림 137명이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을 청원 위해 작성한 장문
- 공훈록 기록에는 파리장서가 2,674자 장문으로 이루어짐

파리장서와 서명자(사진_자료캪춰)

[굿모닝전북신문=오운석기자] 巴里長書(독립청원서)) 소개 - 1部

어제 3.1 국립한국문확관에서 공개한 파리장서를 본지에서 2부에 거쳐 소개합니다 - 편집국

파리장서란 무엇이고, ‘무슨 말을’ 했나? 내용의 골격과 해설
파리장서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맞춰 유교 지식인(유림) 137명이 국제사회에 조선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장문(독립청원서)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이를 “유교 지식인 137명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로 정리합니다.

핵심 구성은 1) 국제정치 언어로 ‘사건의 사실관계’ 제시,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는 과정이 폭력·협박·강요에 기반했고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 “사실관계(불법 강점 과정)”로 세웁니다. 공훈전자사료관 요약에서도 명성황후 시해, 고종 강제 퇴위, 불법 강점 과정 폭로가 주요 내용으로 정리됩니다.

2) 도덕정치(유교적 명분) 위에 국제법/국제여론(근대적 정당성)의 결합으로 “도의(義)와 천리(天理)”의 언어로 침략을 규탄하되, 목적은 국내 결속만이 아니라 파리라는 ‘국제 재판장’에서의 설득입니다. 즉 ‘의(義)’를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정당성 주장으로 번역하려는 시도입니다.

3) 청원서의 결론은 독립 승인 요구와 국제사회의 역할 촉구로 단순 항변이 아니라 “독립을 승인해 달라”는 정치적 요구(청원)로 끝맺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김창숙(1879생, 유학자 성균관대 창립자, 독립운동가) 이 1919년 3월 27일 상하이에 도착해 파리에 있는 김규식에게 전달을 요청하고, 번역본을 인쇄·배포한 흐름이 우리국사편찬위 역사넷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면, 공훈록 기록에는 파리장서가 2,674자 장문이었다는 식으로도 전해집니다(인물 공적 설명 과정에서 언급). 그래서, “선언(짧은 독립선언)”이라기보다, ‘국제 청원서(긴 논증문)’에 가깝다고 해야겠습니다.


곽종석 사당 및 생가(사진_산청군)

면우(俛宇) 곽종석: 인물 소개와 역할(왜 ‘상징’이 되었나)
곽종석은 당시 영남 유림의 종장급 인물로, 파리장서 운동의 큰 축(영남 축)을 형성한 핵심입니다. 2026년 2월 국립한국문학관이 ‘이달을 빛낸 문학인’으로 곽종석과 김창숙을 선정하며 파리장서 원본 공개를 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곽종석의 ‘운동 방식’에서 중요한 대목 3가지는 유림 내부의 ‘정치 행동’ 방향 전환을 끌어낸 어른, 전통 유림은 3·1운동 초기 조직(천도교·기독교·불교)과 결이 달랐고, 내부에도 신중론이 강했습니다. 그런 유림을 “국제 청원”이라는 방식으로 묶어냈다는 점이 큽니다.

문장(논설)·명분의 정치를 보면, 파리장서는 “칼”이 아니라 “글”로 싸운 문건입니다. 유림의 전통 자산(명분론·도덕정치·상소문 전통)을 국제 정치 문서로 전환한 실험이었다고 봅니다.

‘곽종석본’이 최종안의 뼈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인명사전은 파리장서가 영남 유림의 ‘곽종석본’ 내용에 기호 유림 ‘김복한본’ 서명자가 결합된 형태로 완성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김택주 항목은 ‘곽종석본’의 기초(초안)가 곽종석 문하의 김황(金榥)에 의해 마련되었다고도 정리합니다. 곽종석은 “이름만 올린 원로”가 아니라, 텍스트·조직·정당성의 중심축이었습니다.

유림의 독립의식, 그리고 왜 3·1 ‘민족대표 33인’에는 유림이 없었나

1) 불참의 ‘정치사회적 조건’
독립운동인명사전의 설명이 꽤 솔직합니다. 3·1운동 준비 과정에서 유림계도 접촉이 있었지만, 유림은 종교·사상적으로 천도교/기독교/불교 등을 ‘이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선언 방식(독립선언 vs 독립청원)에 대한 입장도 달랐고, 결과적으로 민족대표 33인에는 유림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맥락이 정리됩니다.

즉 “독립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합 전선의 문화적 언어가 달랐고 행동 방식(선언/청원, 종교연합/유림 결사)이 달랐던 겁니다.

 

2) 그럼에도 파리장서가 ‘유림의 결단’인 이유는 파리장서는 유림이 자기 방식으로 “우리는 독립을 원치 않았다”는 식의 왜곡(일제의 여론 조작 가능성 포함)을 뒤집고, ‘유림도 독립을 원한다’는 집단 의사표시를 국제사회에 내놓은 행위였습니다. 공훈록 서술에도 “유학자들이 민족대표에서 빠진 것을 통분”해 직접 파리강화회의로 보내기로 했다는 취지의 설명이 보입니다.

3)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파리장서 운동은 서명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대대적 검거·조사로 이어졌습니다. 독립운동인명사전은 “서명자는 137명… 그러나 서명하지 않았음에도 체포된 자가 80명”이라고 적습니다.

그래서, 유림 내부의 실무자·연락책·배포자까지 포함하면,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조직적 정치행동이었습니다.

4) 137인(기미유림단) 지역 조직 방식, ‘시도별 137인’ 구분해 보면 확인 가능한 범위내 전북 명단은 .파리장서 추진 논의에서 강원·충북 / 충북·충남 / 경기·황해 / 전남·전북 / 함남·함북 / 평남·평북처럼 권역을 나눠 서명자 규합을 결의했다는 설명이 독립운동인명사전 항목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전북(전북특별자치도) 파리장서 서명자 중 “전북 출신(또는 전북 연고)”이면서 파리장서 서명 사실이 공공/학술 사전급 출처로 확인되는 사람들(10여명 중)
▶고창권(고창 4인) — 여러 공적/기사 자료에서 반복 확인됨
고석진(高石鎭), 전북 고창 출신, 파리장서 137인 서명자
고순진(高舜鎭), 전북 고창 출신, 파리장서 서명
고예진(高禮鎭),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장서 서명(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용진(高龍鎭), 전북 고창 출신, 파리장서 서명운동 가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남원권
김택주(金澤柱), 전북 남원 출신, 파리장서운동 서명
▶ 정읍권
김양수(金陽洙),
정읍 출신 ‘파리장서 137인 중 1인’으로 기념비 건립 보도됨

정리하면, 전북 명단은 고석진·고순진·고예진·고용진(고창)과 김택주(남원), 김양수(정읍, 지역 보도 확인) 등이 우선 확인되고 있습니다. 

5) 면우 곽종석의 사상(정치사상) 분석, “유교가 어떻게 ‘독립’으로 연결됐나”

곽종석의 계열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도덕적 정통(명의)과 자주(국권), 반침략(의리), 국제 호소(청원)’의 결합입니다. 곽종석과 김창숙이 “젊은 유생은 서명하지 말라(보호 조치)”고 권고했다는 대목은, 운동이 감정적 분출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을 갖춘 행동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파리장서가 영남의 곽종석본을 중심으로 하고, 기호(김복한본) 서명을 결합해 137인으로 완성되었다는 설명은, 사상적으로도 ‘유림 내부 통합’을 먼저 달성한 뒤 외부로 나간 운동임을 말해줍니다. 곽종석 사상은 흔히 “근대 민족주의자”로만 뭉개기보다, 유교의 정치윤리(의·명분)로 침략을 규탄하면서, 그 결론을 ‘국제정치 행위(강화회의 청원)’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 즉 “근대적 수단(국제청원)”을 택했지만, 동력은 “유교적 명분정치”였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6) 파리장서의 ‘정치사상사적 구조’(사상사 지도처럼 정리)
▶ 정통론(正統論) / 국권론(國權論)
조선의 주권은 본래 정당하며, 강탈은 불법이라는 주장(정통의 훼손)
▶ 의리·도덕 정치(유교 정치윤리), 침략 규탄의 근거
‘힘의 논리’가 아니라 ‘도의의 파괴’로 규정
▶ 폭로(팩트 제시), 국제여론전
명성황후 시해, 고종 강제퇴위, 병합 과정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는” 방식(공훈 자료 요약에도 반복)
▶청원(請願)이라는 행위 형식은 ‘선언’이 아니라 ‘국제정치 문서’
파리강화회의라는 무대에 맞춘, 비교적 근대적인 외교행위
▶ 내부 효과, 유림의 자기갱신(‘우리도 독립운동의 주체’)과 지역 조직 결속
실제로 서명·배포·연락 과정에서 검거가 뒤따랐고(서명 외 체포자도 많음), 유림 사회 내부에 큰 충격을 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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