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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전쟁 삽화(사진_AI이미지 형상화) |
[제천세상] “회색전쟁(Gray Zone conflict / Grey Zone activities)”이 정확히 무엇인지, 왜 최근 국제정치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지, 어떤 수단으로 벌어지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추세가 어디로 갈지를 2회에 걸쳐 깊이 있게 소개합니다 - 편집국
회색전쟁(灰色戰爭)이란 무엇인가
국제안보 분야에서 말하는 회색전쟁은 보통 평시와 공개적 전면전 사이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강압을 뜻합니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관련 자료는 이를 “평화와 공개적 무력충돌 사이의 공간”으로 설명하고, RAND(국제정책,군사전략 연구의 핵심 기관 : 회색전쟁을 가장 먼저 체계화 한 전략 씽크탱크)도 “평화와 전쟁 사이의 작전 공간”이라고 규정합니다. 즉, 탱크와 미사일이 대놓고 충돌하는 전면전은 아니지만, 상대국의 안보·정치·경제·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키기 위해 지속적·의도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전쟁처럼 때리되, 전쟁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왜 ‘회색’인가
흑백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듭니다
회색전쟁의 핵심은 모호성입니다.
상대가 공격을 받아도 곧바로 “이건 전쟁이다”라고 선언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정규군 대신 해경, 민병선, 정체불명의 해커, 가짜뉴스 네트워크, 경제 제재, 선거 개입, 해저 케이블 교란, 위성 신호 방해 같은 수단이 동원됩니다. NATO 자료는 회색지대에서의 대표 수단으로 허위정보, 선거 개입, 사이버공격, 중요 인프라 교란, 사회 분열 조장 등을 들고 있습니다.
즉 회색전쟁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만, 피해를 입은 쪽이 곧바로 집단방위조약 발동이나 전면 군사보복으로 가기 어렵도록 설계됩니다.
회색전쟁과 하이브리드전은 같은 말인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두 용어는 자주 섞여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결이 다릅니다.
회색전쟁은 주로 전쟁 문턱 아래에서 벌어지는 강압 경쟁의 공간과 방식을 가리킵니다.
반면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은 군사·비군사 수단을 뒤섞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이미 무력충돌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 적용될 수 있습니다. NATO 문헌도 회색지대 활동과 하이브리드 수단을 구분하면서, 전쟁 이전의 낮은 단계에서 정보전·경제압박·사이버공격 등이 먼저 작동하고, 필요하면 그 위로 군사행동이 얹히는 식의 연속선을 설명합니다.
정리하면, 회색전쟁은 전쟁 문턱 아래에서 상대를 갉아먹는 경쟁이고 하이브리드전쟁은 군사와 비군사를 섞어 쓰는 더 넓은 전쟁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가장 실용적입니다.
회색전쟁의 대표 수단
총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정보, 돈, 네트워크다. 회색전쟁은 보통 다음 수단들이 복합적으로 움직입니다.
첫째, 정보전과 허위정보 유포입니다.
가짜뉴스, 여론조작, 특정 집단 혐오 조장, 선거개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회적 신뢰를 허물수록 국가는 안에서부터 약해집니다. NATO는 이런 행위를 사회 결속을 흔드는 대표적 회색지대 위협으로 봅니다.
둘째, 사이버공격입니다.
전력망, 항만, 은행, 통신망, 언론사, 정부기관을 조용히 마비시키거나 정보를 빼갑니다. 물리적 폭격보다 흔적이 덜 남고, 책임 주체를 흐리기 쉽습니다.
셋째, 해양 회색전술입니다.
정규 해군 대신 해경선, 민병선, 어선, 조사선 등을 동원해 영유권 분쟁 수역을 조금씩 잠식합니다. RAND와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특히 중국의 해양 회색지대 활동을 이런 유형의 전형으로 다룹니다.
넷째, 경제·금융 압박입니다.
특정 품목 수출입 제한, 결제망 차단, 에너지 공급 흔들기, 보험료 폭등 유도, 항로 위협 같은 방식입니다. 이 점에서 호르무즈 해협과 위안화 문제도 단순한 해운 문제가 아니라 회색전쟁적 성격을 띨 수 있습니다. 전면 봉쇄가 아니라도, 특정 통화·특정 국가에 유리한 통행질서를 만들면 그 자체가 경제적 강압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회색전쟁의 정의에 비춰본 분석적 해석입니다.
다섯째, 중요 인프라 교란입니다.
해저 케이블, 위성, 항만, 송전망, 석유·가스 설비, 물류 허브가 표적이 됩니다. EUISS는 특히 해저 케이블 취약성이 인도태평양 지정학에서 중요한 위험 요소라고 짚고 있습니다.
왜 지금 회색전쟁이 더 중요해졌나
핵보유국 시대에는 ‘애매한 공격’이 더 유리합니다
최근 회색전쟁이 부상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핵보유국끼리 정면충돌하면 비용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상대를 약화시키되 전면전 문턱 아래에 머무르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RAND는 미국의 경쟁국들이 점점 이런 회색지대에서 영향력을 다투고 있다고 보고, 미 해안경비대 같은 비전통적 수단의 역할까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또 하나는 디지털 환경입니다.
과거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사이버공격, 여론조작, 드론·위성 교란, AI 생성 허위정보 등을 통해 상대 사회를 흔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회색전쟁은 이제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언론, 금융, 통신, 물류, 에너지까지 모두 포함하는 문제가 됐습니다. NATO 자료도 회색지대 위협이 단순 군사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최근 추세
회색전쟁은 ‘보조전술’이 아니라 주전장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추세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상시화입니다.
예전에는 위기 때만 벌어졌다면, 이제는 평소에도 계속됩니다. 군사훈련, 해양진입, 정보전, 경제압박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CSIS는 2025년 중국의 군사 활동이 대만해협, 남중국해, 일본 인근, 제1도련선 밖까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공개전쟁은 아니지만, 압박의 강도와 범위가 확대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둘째, 민군 경계 붕괴입니다.
군함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해경, 상선, 어선, 에너지기업, 플랫폼, 해커조직, 영향력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입니다. RAND는 중국의 회색전술 분석에서 외교·정보·군사·경제 수단이 함께 쓰인다고 봤습니다.
셋째, 해양과 인프라 중심화입니다.
남중국해, 대만 주변, 발트해, 흑해, 호르무즈처럼 해상 chokepoint와 해저 케이블, 에너지 인프라가 핵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UISS는 해저 케이블 보안을 인도태평양의 전략 문제로 지적했고, 최근 EU 문서들은 러시아의 회색지대 활동을 해상·에너지 연결망과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넷째, 법률전·규범전 강화입니다.
상대가 군사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게 국제법 해석, 국내법, 해양경계, 제재 명분, 인권 담론 등을 선점하는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총알보다 느리지만 오래 가는 전선입니다. 이 부분은 여러 회색지대 사례를 종합한 분석적 정리입니다.
다섯째, AI와 데이터 기반 정교화입니다.
CSIS가 다룬 중국의 대만 인근 해양 회색지대 사례는 방대한 선박 데이터와 패턴 분석을 통해 회색작전이 얼마나 정교해졌는지 보여줍니다. 앞으로는 AI가 허위정보 생산, 표적 선전, 사이버 침투 자동화에 더 많이 쓰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공개자료들은 이미 회색전쟁의 데이터화·자동화 흐름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대표 사례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례는 중국의 해양 회색지대 활동입니다. RAND는 중국이 인도태평양의 동맹·파트너국들을 상대로 정규전 이하 수준에서 강압적 수단을 체계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분석합니다. 여기에는 해양민병대, 해경, 공세적 항행, 외교·경제 압박 등이 포함됩니다.
또 다른 축은 러시아식 회색지대 활동입니다. NATO와 EU 관련 문서들은 정보전, 인프라 교란, 에너지 활용, 해상 공간에서의 모호한 압박을 주요 위험으로 다룹니다.
중동에서는 항로 위협, 유조선 압박, 에너지 공급 불안 조성이 회색전쟁과 맞닿습니다. 완전한 전면 봉쇄나 선전포고 없이도, 시장과 보험·물류 체계를 흔들면 상대 경제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회색전쟁의 일반 정의를 중동 해상 안보에 적용한 분석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회색전쟁은 더 많아지고, 더 싸지고, 더 일상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회색전쟁은 전면전보다 비용이 낮고, 책임 회피가 쉽고, 국내외 여론전을 병행하기 좋아서 강대국과 지역 강국 모두에게 매력적입니다. RAND는 미국이 점점 이런 회색지대 경쟁에 더 많이 직면하고 있다고 보고, CSIS도 인도태평양에서 활동 범위와 강도가 넓어지는 흐름을 지적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AI 허위정보, 위성·GPS 교란, 해저 케이블·데이터센터 위협, 금융결제망과 통화의 무기화, 민간 선박·민병선 활용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공개 자료들은 이미 해양, 정보, 인프라, 결제질서가 회색지대 경쟁의 핵심 무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회색전쟁은 “쏘지 않고도 국가를 약화시키는 전쟁”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국제정치의 많은 충돌은 정규전보다 이 회색지대에서 더 오래, 더 집요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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