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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전북신문

[수필] 이천 도자기와 스포츠가 전한 인생의 지혜..
문화

[수필] 이천 도자기와 스포츠가 전한 인생의 지혜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5/10/21 14:07 수정 2025.10.21 14:10

수필가 우장식(굿모닝전북신문)

[우장식 수필] 가을의 초입에서 경기도 이천의 하늘 아래, 문화체육부장관배 전국 그라운드골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저는 오랜 설렘을 안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이천은 이름만 들어도 고고한 도자기와 기름진 쌀이 떠오르는 곳, 그 땅에서 펼쳐질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촉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막상 대회 당일 예보에 없던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틀간 진행될 예정이던 시합은 우천 관계로 급히 하루로 단축되었고, 선수들은 혼란스러움과 함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빗줄기 속에서 아쉬움이 교차하던 그때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분명했습니다. 아, 정말 오래전 직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의 얼굴이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덧대어졌지만, 그 특유의 미소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보게, 신 부장이 여기 웬일인가!"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움에 끌어안았습니다. 참으로 뜻밖의 만남이었습니다. 지난 세월의 안부를 물으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헤어질 무렵 그는 제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여 주었습니다.

명함의 한쪽 모퉁이를 바라보던 저는 숨을 들이켰습니다. 그곳에는 분명히 '00 대학교 교수'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동료였는데, 어느새 퇴직 후 어엿한 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것을 확인한 순간, 제 마음속에서는 뜨거운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삶이 저만의 노력으로 빛나는 성공을 이루었음에 깊은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고,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직장 동료와의 감격적인 재회, 그리고 그 놀라운 소식은 저에게 또 다른 ‘뜻밖의 우연’을 선사했지만, 여전히 비 때문에 경기가 다음 날 하루로 결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우리 팀은 인근 볼거리가 있는 곳을 생각하자, '도자기 전시관'이라는 간판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정갈하게 놓인 백자, 화려한 문양을 뽐내는 청자, 그리고 소박한 매력이 스민 분청사기까지, 수많은 도자기들은 각자의 빛깔과 형태를 뽐내며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작품들을 둘러보던 중, 저는 문득 기묘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고운 흙이 장인의 손길을 거쳐 정교하게 빚어지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수백번의 변화를 거쳐 마침내 영롱한 자태를 드러내는 도자기의 과정이,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그라운드골프의 샷, 한 샷과 닮아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골프에서 좋은 스윙은 끊임없는 연습과 인내,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에서 비롯됩니다. 바람의 방향과 잔디의 결, 공의 무게와 클럽의 각도까지 모든 것을 고려하여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정교함은, 마치 도공이 흙의 성질을 완벽히 이해하고 불의 온도를 조절하며 혼을 담아 빚어내는 예술과 다름없었습니다. 전시관에 서서 저는 그라운드골프를 할 때의 그 심장이 울리는 듯한 긴장감,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때의 희열,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깊은 한숨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도자기 속에 녹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흙이 그러했듯, 우리의 마음 또한 수많은 경험과 역경 속에서 단련되고 마침내 단단한 형상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생의 철학을 어렴풋이 발견했습니다.

 
오랜 직장 동료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교수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른 것 또한, 흙이 도자기가 되는 과정처럼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응집된 결과였을 것입니다. 도자기의 깊은 아름다움 속에서 잠시 동안의 평화와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이튿날 날이 밝자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촉촉하게 젖은 구장은 더욱 싱그러웠습니다. 직장 동료와의 반가운 재회, 퇴직 후의 놀라운 성공 소식, 그리고 도자기 전시관에서 얻은 예기치 못한 영감 덕분이었을까요? 제 스윙은 한결 부드럽고 정교해진 듯했습니다. 홀을 향해 날아가는 공은 마치 도공의 혼이 담긴 흙처럼 제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뜻밖의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우리 팀에게 주어졌습니다.

물론 우승이라는 최고의 자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준우승이라는 결과는 우리에게 더 큰 기쁨과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가 있었지만, 그 덕분에 오랜 직장 동료와의 귀한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속에서 그의 빛나는 성장과 함께 그라운드골프의 또 다른 본질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 것입니다. 함께 고생한 팀원들과 함성을 지르며 나누었던 기쁨은, 제가 도자기에서 느꼈던 깊은 깨달음만큼이나 소중했습니다.

 
이천에서의 그날 단순히 경기에 참여한 날이 아니라, 직장 동료의 놀라운 변신과 도자기, 스포츠, 그리고 삶의 오묘한 이치를 함께 탐구했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여정으로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삶은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이 모여 뜻밖의 깨달음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2025.9.18.

 

수필가 우장식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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