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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시] '추암 공석진'의 "안녕!'..
문화

[칼럼 & 시] '추암 공석진'의 "안녕!'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입력 2025/11/18 15:05 수정 2025.11.18 15:32
- 시를 쓴다는 건, 시간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전적으로 몰입의 힘인 것이다
- 또한 관심의 힘이고, 메모의 힘이다

시인 추암 공석진(사진_추암)

[시인 공석진, 칼럼 그리고 시] 안 녕!                                                                                 
이틀 동안 어느 일본인 가족의 서울 시내 관광에 발이 되어 주었던 건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이었다. 단순히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깨우친 것 중 하나는 그동안 너무 조급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차를 몰고 서울 시내를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조금만 차가 막혀도 짜증을 내는 건 예삿일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곧 풀린 정체를 참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기다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사람의 정에 많이 굶주려 있다는 사실도, 깨달은 것도 이번이다. 그러다 보니 시 창작도 그런 류의 응어리진 시만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단 이틀 간의 동행에 무슨 정이 그렇게 쌓였을까마는 작별하는 감정은 또 어김없이 슬픔을 자아낸다. 특히 말이 통하지 않아 "안녕!"이란 말 밖에 할 수 없어 그 말만 주고받던 열 살짜리 '쥬리'라는 일본인 아이가 펑펑 울었던 건, 필자의 마음을 읽은 까닭이다. 고작 어제의 일인데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건 필자의 심각한 애정 결핍 증세 때문이기도 하다.

 

쥬리의 이별 앞에 눈물(사진_추암)

낯선 분들과 함께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잉여의 시간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건, 시간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전적으로 몰입의 힘인 것이다. 또한 관심의 힘이고, 메모의 힘임을 필자는 잘 안다. 남들은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시간에도 필자의 시 창작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없어서 못 쓴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의 일상이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는 건, 사실은 자신의 관찰이 마음까지 전달되는 일에 스스로 등한시했기 때문에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시작은 스쳐지나가는 단상과 간단한 끄적임에서 비롯된다. 끄적임은 일상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이 다 시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틀 간의 일정 속에서 필자는 이태원 거리를 한 십여 분 걸었었다. 눈여겨 가슴에 담으며 거리를 걷다가 숱한 청춘이 스러진 길에서 발에 밟히는 단풍 여러 개를 주웠다. 아직 빨간 색감을 유지하는 게 참 다행이었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도 이 단풍처럼 밝고 명랑하게 자신의 색깔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단순히 애도하는 마음하고는 또 다른 것이다.

일본인 가족을 신라호텔에 내려 주고 장충동 인근 카페에서 낮부터 써 오던 '타살의 흔적이 어디 물리적인 것 뿐일까'라는 제목의 시를 마무리하려는데 늦은 밤비가 쏟아진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예상하지 못했었다. 창밖으로 겉옷을 머리에 걸치고 황망히 뛰어가는 행인들의 발놀림이 매우 빠르다. 이런 광경들이 다 눈에 밟히는 건, 그것 역시 '눅눅한 마음의 힘'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래서 그런 특유의 관찰이 필자가 여지껏 이천칠십이 편의 시를 지어 발표한 이유일 것이다.


아! 가을, 안녕!(사진_시인 공석진)

'그는 실존에 연연치 않겠다더니 / 그 힘든 자발적 고독을 여러 번 거치는 동안 /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 자살로 결론지어 버렸다 / 유서가 이천칠십이 편의 시에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 그런 가설은 설득력이 있었다 / 여덟 개로 토막난 시집의 부검을 포기한 것은 / 우울의 중병을 앓는 듯 / 극한의 슬픔으로 몰고 가는 정황상 판단이었을 것이다 / 최근 가까이 지내던 몇몇 사람들 사이에는 /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 / 이제 사람들은 누구의 시에 위로를 받느냐고 / 결국 그가 쓴 숱한 시들은 / 스스로에게 안녕을 고하는 추모시였다고'

은퇴 이후의 삶이란 실종된 시간이며 결국 영원히 잊혀지는 사망 선고와 다를 바 없다는 우울한 상상에서 비롯된 위 시에서의 안녕은 스스로의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일본인 소녀와의 안녕은 필자에게 무한한 힘을 돋우는 상반된 인사인 것이다. 그렇게 쥬리와 필자가 나누었던 유일한 언어였던 "안녕!", 이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던 필자의 시 역시, 강한 부정은 긍정의 신호이듯 종지부가 아닌 절망을 딛고 미래를 향하여 다시 내딛는 첫걸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쥴리와의 재회를 기대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공석진 프로필]
- 시인, 칼럼니스트  

- 공석진 문학관 관장

- 추암문학아카데미 원장

- 전 파주문예대학 교수

- 경기도 문학상 수상

- 시집 '흐린 날이 난 좋다' 등 7권

- 시 창작론 '글이 시가 되는 길'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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