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인 기념촬영(사진_김지연) |
[굿모닝전북신문=오운석기자] 지난 10.29일은 가평 청리움 산자락이 온전히 문학의 빛으로 물든 하루였다.
한컴그룹(회장 오하 김상철 시인)이 후원하고 도서출판 앤바이올렛·한컴 청리움이 주최한 제1회 한컴 가을 문화축제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앞두고 성대한 막을 올렸다. 160여 명의 문인과 예술인이 모였고, 문학적 열정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깊고 투명하게 행사장을 채웠다.
공모전에는 900여 작품이 접수되어 문학의 뜨거운 현재를 증명했다. 최운선 대회장을 비롯한 권위 있는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심사 끝에 대상은 치우 신명희 시인, 현장 백일장 금상은 백경미 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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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리움 문화축제(사진_김지연) |
그러나 그날의 정점은 시상식의 열기가 아닌, 문학이 사람의 심연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이었다.
해윤 김지연 시인은 무대의 중앙에 올라 〈침묵의 비〉를 조용히 낭송하기 시작했다. 문학이 고요를 흔드는 순간이었다. 오직 시인의 숨결만을 품고 있었다. 오하 김상철 시인의 대표작, 〈침묵의 비〉 그 전문이 낭송과 함께 천천히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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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으로부터 김상철 한컴회장, 정현덕 추진위원장 (사진_김지연) |
〈침묵의 비〉 / 오하 김상철
빗소리에 잠을 깻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빗소리다
많은 일들이 스쳐간다
좋은 일 나쁜 일 그리고 씻겨진다
빗물에 많은 얼굴도
좋은사람 그런 사람 기억은 아물한데
애틋한 사람도 별로 없는데
비가 오면 젖어드는 마음은 긴 침묵을 만든다
내리고 씻겨가고 기억을 더듬고
슬픈 기억도 없는데 슬퍼지고
젖고 싶다 빗물에
그리고 비를 맞으며 마냥 걷고 싶다
고궁을 걷고 싶다 먼 기억을 간직한 고궁을
비가 오는 강가에 물안개가 더욱 나를
심연으로 이끈다 가라앉는다
나의 참새들은 어데서 비를 맞을까?
시의 결을 따라 청중이 젖어들다
낭송은 빗방울처럼 느리게, 그러나 뼛속 깊이 스며드는 속도로 청중에게 번졌다.
| 해윤 김지연 시인의 침묵의 비 낭송 모습(사진_김지연) |
첫 구절이 울려 퍼지자 청중은 하나둘 숨을 고르고 귀를 기울였다. 기억 속에서 오래 젖어 있던 비 냄새가, 누군가의 잊힌 시간과 닮은 감정들이, 낭송을 매개로 조용히 깨어났다.
특히 마지막 구절, “나의 참새들은 어데서 비를 맞을까?”가 들려오는 순간, 시인은 자신을 향한 질문이자 누군가를 향한 연민을 동시에 던졌다. 이는 ‘연약한 자아를 걱정하는 시인의 인도(引導)’이자 ‘고독 속에서도 세상을 품으려는 마음’이었다.
낭송이 끝났을 때 홀 안은 침묵과 떨림이 동시에 가득한 정적으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이내 터져 나온 박수는 길고 깊었다. 몇몇 문학인은 눈가를 훔쳤다. “문학은 말보다 침묵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라는 탄성이 이어졌다. 그날 가장 빛났던 건 상장도 상금도 아닌, 시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힘이었다.
| 김상철의 시 진솔한 인연, 식순(사진_자료) |
김상철 회장, “문학은 한글의 심장… 우리는 그 곁을 지킬 것”
정현덕 추진위원장은 “김상철 회장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진심이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며 김 회장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김상철 시인은 자리한 모든 문인에게 일일이 선물을 건네며 “이 축제는 한글의 위상을 지키고 한국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는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제2회 한컴문학상부터는 더욱 확대하고 문학인들이 더 멀리, 더 깊게 갈 수 있는 발판이 되겠다”고 약속해
큰 환호를 받았다.
이날 축제는 예술의 손길이 더한 가을, 화가, 서예가, 음악가의 합주가 있었다. 임재 김성호 화백의 1m×10m 대형 바닥 캔버스 퍼포먼스는
아침의 빛을 가을의 숨결로 옮겨 놓은 듯 했고, 교남 김영만 서예가는 대형 천 위에 ‘소중한 인연—오하산방에서’라는 휘호를 힘 있게 그어
문학의 의미를 예술로 확장시켰다.
예성·김승옥·김지훈 음악가의 공연은 흩어질 수 있는 감정을 다시 모아 문학의 장에 따뜻한 울림을 더했다.
| 한컴 청리움 전경(사진_자료) |
한글의 혼을 밝히는 공간, 한컴 청리움의 새로운 시작
제1회 한컴 가을 문화축제는 문학과 예술, 그리고 한글의 정신이 어우러진 ‘한국 문학의 성지’로서 청리움의 가능성을 보여 준 첫 무대였다.
이곳에서 매년 축제가 이어진다면 청리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한글을 발전시키는 산실”, 그리고 한국 문학사에 이름이 남을 새로운 거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시작점에서 울려 퍼진 것은 퇴색하지 않는 시 한 편의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울림이 앞으로의 청리움과 한컴문학상을 더 깊고 더 넓은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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