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힘당 대표, 16세 이상 투표권 주장(사진_굿모닝전북신문)
[제천 칼럼]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셈인가 – 16세 투표권, 교육감 후보들의 답을 요구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감 후보들에게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생겼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주장한 16세 투표권 확대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물음에는 학교를 어떤 공간으로 지킬 것인가, 교육을 정치로부터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 아이들을 ‘시민’으로 키울 것인가, ‘표’로 소비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철학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 확장인가? 아니면 학교의 정치 오염인가
16세 투표권 주장은 그럴듯한 외피(外皮)를 두르고 있다. “민주주의 확대”, “청소년 참여”, “미래세대 권리 보장”이라는 말은 듣기 좋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투표권은 곧 정치세력의 접근권(接近權)을 뜻한다. 투표권이 주어지게 되면 학교는 더 이상 중립(中立) 공간이 아니다. 정당, 캠프, 정치 유튜버, 이념 단체들이 ‘미성년 유권자’라는 새로운 표밭을 향해 문을 두드릴 것이다. 교실은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가 침투하는 전초기지가 될 위험이 크다. 교사의 정치 성향, 학교장의 성향, 교육청의 분위기까지 모두가 ‘정치적 오염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교육감 후보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교실이 정치의 최전선이 되는 것을 감수할 수 있는가.
아직 미성숙(未成熟)한 판단능력, 정치의 도구로 쓰일 위험
16세는 아직 정치적 판단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연령대다. 국가재정, 연금, 외교안보, 산업정책 같은 구조적 문제를 숙고하기보다는 SNS 알고리즘, 짧은 영상, 분노를 자극하는 선동(煽動) 메시지에 더 쉽게 반응하는 나이이다.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동원의 대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는 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기보다, 표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들을 ‘설득’이 아니라 ‘조작’의 대상으로 삼을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급식, 교복, 스마트폰, 게임 같은 감성 공약이 난무하고 정책은 얕아지며, 정치의 품격은 낮아질 것이다. 교육감 후보들에게 묻는다. 학생을 유권자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학생을 보호하는 교육자의 시선인가?
선동정치의 전형, 개혁을 가장한 프레임 전환
장동혁 대표의 주장은 개혁의 언어를 입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계산이 짙다. 보수정당이 취약한 청소년·청년층을 선점하기 위한 세대 지형 재편 시도이자 ‘미래세대 친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하기 위한 프레임 전환이다. 민주주의 확장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학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장치, 청소년 보호를 위한 선거법·교육법 정비, 정치 선동으로부터 학생을 차단할 제도 설계다. 그러나 그런 준비는 보이지 않는다. 제도는 허술한데, 구호만 요란하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선동정치의 전형(典型)이다.
교육감 후보 검증, 이제는 ‘교육 철학(哲學)’을 묻자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들에게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16세 투표권 확대 찬반 여부, 학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생각, 교실의 정치 논쟁장 용인 여부, 학생 보호가 먼저인지, 정치 실험이 우선인지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감은 정치인이 아니다. 아이들을 ‘시민으로 키우는 사람’이지 ‘유권자로 조기 편입시키는 관리자’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참정권 확대는 진보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성숙의 문제다. 사회가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참정권 확대는 민주주의의 진보가 아니라 정치의 하향(下向) 평준화이자 교육의 붕괴(崩壞)일 뿐이다.
16세 투표권은 아이들의 권리를 넓히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을 정치의 전장(戰場)으로 끌어들이는 위험한 실험이다. 교육은 정치보다 먼저 지켜져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들은 이 질문 앞에 침묵하지 말고 분명한 소신으로 답해야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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