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세상]국밥 한 그릇에 담긴 ‘애환의 역사’- 그 서러운 “배고픔”, “허기”
새벽 네시 무렾, 아직 어둠이 골목에 내려 앉아 있는 시간. 전주 남부 시장통 한켠 콩나물 국밥집에선 벌써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허연 수증기 사이로 허리 굽은 어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메고 한 손 가득 콩나물을 움켜쥐어 뚝배기에 넣는다. 그리고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말없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막노동판으로 나가는 인부. 밤새 소 달구지, 마차를 몰고 온 인근 지역 장사꾼, 경매를 끝낸 채소장수. 신문을 돌린 학생. 가까운 방직 공장 야간조를 마친 남녀 직공들. 그들의 하루는 대개 콩나물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며 시작된다.
남부시장에 가면 뜨거운 국물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밤새 삶아놓은 쌀과 보리가 섞여진 찬밥 덩이에 뜨거운 국물을 몇 번씩 드리부어 토렴을 해 먹는 그 맛, 이미 이들에겐 국밥 한 그릇이 생존의 식사였다.
우리 한국의 민초들은 아주 오랜세월 동안 굶었다. 지금처럼 배달앱을 열어 치킨과 피자를 고르는 시대가 오기 전, 이 땅의 백성들은 오랫동안 “오늘 무엇을 먹나?”며 텅 빈 항아리 속을 들여다 보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며 살아 왔다. 오죽하면 “밤새 안녕 하셨습니까”가 아침 인사가 되었을가?
조선의 농민들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쑥을 캐고, 칡뿌리를 삶고, 나무껍질을 벗겨 죽을 끓였다. 흉년이 들면 “초근목피”라는 말이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등장할 정도였다. 홍길동전도 민중의 배고픔, 굶주림의 소설이라고 평가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조선의 엔만한 책속에 모두가 기록되어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다는 뜻이다..
그 가난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일제강점기의 소작농은 자기 논에서 나온 쌀을 먹지 못했다. 좋은 쌀은 일본으로 실려 갔고, 조선 농민들은 조밥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해방 이후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고, 1960~70년대 산업화 시절 수많은 노동자들은 도시 판잣집과 달동네에서 새벽을 맞아야 했다.
그때 한국인의 배를 채운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콩나물국밥이었다. 왜 하필 콩나물이었을까. 가난했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물만 있어도 잘 자랐다. 짧은 시간 안에 대량으로 길러낼 수 있었다. 비쌀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값이 싸다고 음식의 품격까지 싸구려였던 것은 아니다. 콩나물국밥은 놀랍도록 과학적인 음식이었다. 뜨거운 국물은 새벽 추위를 막아주었고, 밥은 허기를 눌러주었으며, 콩나물은 지친 몸을 깨웠다. 술에 절은 노동자의 간을 달래주고, 밤새 일한 일꾼들의 속을 풀어줬다. 그래서 국밥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가난한 시대의 쉼터였다.
전주콩나물국밥이 특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전주의 새벽시장과 남부시장, 술집 거리, 역전 골목과 여인숙 거리에는 늘 노동이 넘쳐났다. 짐꾼들이 있었고, 행상이 있었고, 공사판 인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콩나물국밥은 단순한 메뉴판의 한 줄이 아니었다. “오늘도 살아내자”는 연료였다. 누군가는 국밥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고, 누군가는 그 국밥값을 벌기 위해 다시 하루를 견뎠다.
그래서 한국의 국밥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배어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 현대사는 늘 “배고픔과의 전쟁”이었다. 부모 세대는 자식만큼은 굶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공장으로 갔고, 광산으로 갔고, 중동 건설현장으로 갔다. 그들이 흘린 땀 위에서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노동의 곁에는 늘 국밥집 불빛이 있었다. 새벽 네 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식당. 연탄불 위에서 하루 종일 끓던 육수. 천 원짜리 한 장으로 허기를 달래던 노동자들. 한국의 경제성장률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실은 그 국밥 냄새가 대한민국을 움직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먹방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맛집”을 찾아 줄을 서고, 음식을 남길 정도로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 우리 부모와 조부모 세대는 국밥 한 그릇에 삶의 희망을 담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의 밥상에는 아직도 묘한 슬픔이 있다. 국밥 한 숟갈 속에는 가난을 견딘 시간, 가족을 먹여 살린 노동, 그리고 “다시는 굶지 말자”는 집단적 기억이 들어 있다. 콩나물국밥은 화려한 궁중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다. 왕의 식탁이 아니라, 백성의 허기를 기억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20여일 앞으로 다가 온 6.3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우리 국밥의 애환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 국민 한 사람이라도 굶지 않는 “풀뿌리 민주주의, 콩나물 국밥 정치”를 해 주었으면 한다.
오운석 기자 info1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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