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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창문화원, 제42회 고창학 연구발표회 개최…마을 이름으로 고창 역사를 다시 짓다

최진수 기자 ds4psd@naver.com 입력 2025/11/28 15:16
– 고창학연구소 조사위원 20명, 마을 지명·설화·구술 종합 정리…동백정·당산제·사진포 기록으로 지역 정체성 다져 –

고창문화원, 제42회 고창학 연구발표회 / 고창군 제공

[굿모닝전북신문=최진수기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문화원이 지난 27일 ‘제42회 고창학 연구발표회’를 열고, 고창 곳곳 마을 이름에 숨은 역사와 생활문화를 본격적으로 꺼내 세상 앞에 내놓았다. 고창학연구소 조사위원 20명이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마을 유래와 지명, 설화, 주민 구술을 한 권의 발표집으로 묶어 군민과 문화원 회원에게 공개한 것이다.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지역 기억을 구조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을 이름에 숨은 역사, 정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번 연구발표회는 고창학연구소 조사위원 20명이 관내 마을 지명의 유래를 중심으로 역사적 배경, 지리적 특징, 마을 인물, 전해 내려오는 설화, 주민 구술을 종합 정리해 발표집을 발간한 자리다.

조사위원들은 지난 한 해 동안 각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옛 문서와 자료를 대조하며 이름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채집했다. 책상머리에서 만든 보고서가 아니라, 흙먼지 묻은 신발과 녹음기에 담긴 목소리에서 출발한 ‘현장 보고서’에 가깝다.

마을 이름은 행정구역 코드가 아니라 주민의 삶과 기억이 응축된 상징이다. 행정편의에 밀려 지명이 바뀌고, 노령화로 구술자가 사라지면 이 기억은 복구 불가능한 공백이 된다. 고창문화원이 ‘마을 유래’라는 기초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작업이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동백정·당산제·사진포…고창 로컬리티를 기록하다

이번 발표회에서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고창의 구체적인 유적과 의례, 생활사 현장을 발굴·기록한 사례들이다.

발표회에서는 ▲구동호의 동백정 발굴 ▲공음면 선산마을 당산제 줄 다리기 소리 발굴 ▲흥덕면 사진포의 역사적 이야기 등이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각 사례는 고창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다.

구동호 동백정 발굴
동백정은 이름 자체가 계절감과 자연지형, 인간의 이용 행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동백나무 군락이 만들어낸 풍광, 호수·수역과 어우러진 경관이 한꺼번에 담긴 상징적 장소다. 이번 조사는 단순히 위치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이 공간이 지역민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불려왔는지, 어떤 이야기가 덧입혀졌는지를 함께 정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공음면 선산마을 당산제 줄 다리기 소리 발굴
당산제는 공동체 신앙이자 마을 거버넌스의 원형이다. 그 가운데 줄 다리기 소리는 공동체 의식을 결속시키는 리듬이자, 마을의 정체성을 음성으로 남겨주는 문화 코드다. 이번 발굴은 그 소리를 채록하고, 가사와 맥락을 함께 기록함으로써 사라져가던 의례의 ‘음성 유산’을 붙잡아 둔 작업이다.

흥덕면 사진포의 역사적 이야기
사진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바다와 내륙이 만나는 접점에서 형성된 교통·교역·생활의 흔적을 품은 장소다. 이번 발표에서는 사진포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을 구조적으로 정리해, 흩어진 기억을 시간의 축 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향후 해양·포구 문화 연구와 관광 자원화의 기초자료로도 활용 가능하다.

이들 사례는 “기록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되고, 남겨두면 자원이 된다”는 지역학의 기본 명제를 다시 확인시킨다. 고창문화원이 이번 발표회를 통해 남긴 성과는, 단순히 ‘발굴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조사위원 20명, ‘현장 조사–발표–출간’ 선순환 구조 만들어

연구는 사람과 체계가 만들며, 이번 고창학 연구발표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창학연구소 조사위원 20명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을 누비며 조사–정리–발표–출간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수행했다.

조사위원들은 발표회에서 각 마을 조사 과정의 현장 상황과 후일담까지 담담하게 풀어냈다.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몇 번을 찾아가 설득했는지, 노인이 잊어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얼마나 천천히 질문을 이어갔는지, 오래된 지명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들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등 취재·조사 과정의 뒷이야기가 공유됐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지역학 교육 프로그램이자, 고창학의 내적 역량을 키우는 훈련장이다. 단발성 연구용역이 아니라, **‘현장 조사 – 연구 정리 – 대중 발표 – 결과물 발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고창문화원의 운영 전략이 돋보인다.

지역 정체성 확보와 군민 자긍심 고양…이제는 ‘지원’이 관건

고창학연구소 조사위원들은 앞으로도 지역학 발굴과 연구를 지속해 고창의 지역 정체성 확립과 군민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는 지역문화원의 당연한 역할을 넘어, 지방소멸과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지역이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선 구축 작업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조사위원들의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현장 조사에는 시간과 교통비, 자료 정리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필수다. 마을 원로의 구술을 안정적으로 채록하기 위해서는 녹취·편집·보존 장비도 필요하다. 지자체와 관련 기관이 이 지점에 대해 얼마나 책임 있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이번 발표회가 ‘일회성 행사’로 끝날지 ‘지역학 인프라 구축의 출발점’이 될지가 갈린다.

이번 발표회는 “고창의 정체성을 말로만 외칠 것인가,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군과 지역사회에 던진 셈이다. 고창문화원이 만들어 놓은 연구·발표의 구조 위에 행정과 지역사회가 어떤 지원과 관심을 더할지 주목된다.

“고창의 문화·역사·유산, 함께 발굴하고 기록하자”

이현곤 고창문화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한 해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고창학을 조사·발굴해 주신 위원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고창의 자랑스러운 문화·역사·유산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데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짧은 인사말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발굴과 기록은 문화원만의 일이 아니라, 군민과 지역사회의 공동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마을의 옛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당산제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 사진 속 옛 포구의 풍경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바로 ‘살아있는 자료’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현실적 조치들이다.

마을 단위 구술 채록 사업의 연차적 확대

학교·청소년과 연계한 ‘우리 마을 이름 찾기’ 교육 프로그램

조사 성과를 군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동백정·당산제·사진포 등 발굴 자원의 스토리텔링 및 관광 자원화 연계

이번 제42회 고창학 연구발표회는 그런 방향 전환을 압박하는 신호탄에 가깝다. 고창문화원이 던진 이 신호에 고창군과 지역사회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하느냐가 앞으로의 승부처다.

고창학, ‘지방의 지식 인프라’로 키울 때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은 이미 전국적으로 생태와 역사, 농생명 자원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그러나 이름값에 걸맞은 ‘지식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진행형 과제다. 고창학은 단지 향토사 수준에 머무를 일이 아니다.

마을 유래, 설화, 구술, 유적 기록이 축적되면 다음 단계의 작업이 가능해진다.

학술연구로의 확장(역사학·인류학·지리학·민속학 등)

정책·도시계획·관광 전략과의 연계

교육·문화콘텐츠 산업과의 결합

이번 연구발표회는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깊이, 그리고 지속성이다.

결국, 고창학이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는 지적 방어선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지식 자산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발표회를 통해 지역사회가 공유해야 할 과제다.

고창문화원의 제42회 고창학 연구발표회는 과거의 흔적을 되살려 현재의 고창을 정리하고, 미래 세대에게 건넬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마을 이름 하나, 당산제 노래 한 소절, 포구에 얽힌 이야기 한 줄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기록의 장에 올려놓는 이 수고가 결국 고창군의 품격과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이제 공은 던져졌다. 고창문화원이 만들어 놓은 판 위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과 군민, 그리고 지역의 여러 주체들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 갈지 지켜볼 일이다. 

 

 

 

최진수기자 ds4ps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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